아기자기 스위트룸
카테고리
작성일
2017. 11. 13. 00:34
작성자
순묵애빛

 

 

※ 원작 캐릭터와 자작 캐릭터가 엮이는 드림 소설

 

 

 

※ 쯔꾸르 게임 "Ib"의 엔딩 중 "잊혀진 초상"을 기반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게임 "Ib" 스포일러 주의

 

쯔꾸르 게임 합작이 취소되어 공개합니다.

 

 

 

 

 

 

 

 

 

 

 

이미지 출처

 

 

 

 

 

 한 캔버스에 여러 의미를 담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라 많은 그림을 그린 화가들도 쉽게 그려내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그런 그림을 아무렇지 않게 그려내는 재능을 가진 이는 나타나기 마련. 투박한 선, 단조로운 색으로 캔버스를 채웠지만 그의 그림은 모두 특별한 점이 있었다. 평론가들도 쉬이 말하지 못한 특징. 어떤 이는 기괴하다며 비판했고, 어떤 이는 세계적으로 주목받아야 한다고 극찬했다. 어쨌거나 그의 그림은 모두 이 시대에 이르러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되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살아있는 동안 큰 관심을 받지 못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안타까워하는 이는 모두 다른 사람이었고, 그의 자녀들은 미소만 지었다.

 그 화가만의 전시회가 열린 지 두 달이 되어가고, 코가미가 미술관을 방문한 지 한 달이 넘었다. 그는 평소 글을 읽는 사람이다. 자기만의 개성을 과시하며 시선을 잡아먹는 그림을 보는 것도 물론 좋아했지만 정갈하게 수놓인 문장의 길을 걸으며 분위기를 즐기는 걸 훨씬 좋아했다. 시간이 날 때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지도삼아 마음속의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대신 미술관을 찾았고 매번 같은 그림 앞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 주변인들은 말했다. “드디어 책에 질렸구나.” 유감스럽게도 그런 건 아니었다.

 그를 사로잡은 그림의 제목은 장미의 뿌리. 백색 단발을 가진 여인은 별 다른 표현 없이 얇은 선으로만 형체가 드러났다. 기도하듯 모은 두 손을 투박한 선과 어두운 색으로 이루어진 가시 줄기가 에워싼다. 손목을 덮고 아래로 내려간 줄기가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모른다. 액자가 허용하는 범위가 여인의 팔꿈치 언저리였기에. 간절히 맞잡은 여인의 손 위에는 단색으로 채워진 장미가 피어있다. 이 그림의 유일한 색, 초록빛을 머금은 장미는 꽃을 표현한 이 세계 어느 그림 중 가장 단조롭고 가장 생기가 넘쳤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에메랄드 빛 장미에선 시간이 흐르는 듯 했다.

 유명한 작품들 중에서도 장미의 뿌리가 단연 주목 받은 이유는 이 작품만 다른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화풍이 같아도 다른 작품에선 보이지 않는 묘사가 존재했고 유려한 선으로 연결된 여인과 장미의 존재가 한 캔버스에 담기기엔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관람객들은 물론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여러 해석이 난무했다. 사람들의 질문 사이에서도 자녀들은 그저 미소만 지었다.

 발길이 끊긴 폐관 시간, 어김없이 눅진한 구두소리가 복도를 지난다. 옅은 흔적을 남기며 자리를 옮기던 알싸한 담배 냄새가 익숙한 자리에 멈춰 섰다. ‘장미의 뿌리’. 은은한 조명 빛이 긍정하듯 캔버스와 이름표를 비춘다. 코가미는 오늘도 액자 속 여인을 바라본다. 살그머니 입가에 호선을 그리더니 우무럭거리던 손가락을 주머니에 구겨 넣는다. 한 곳을 기점으로 시선을 떼지 못하면서 굳어가는 턱 때문에 괜스레 입술을 잘근댄다. 금방 땀이 차버린 손을 주머니에서 빼야할지 그대로 있어야 할지 고민하는 찰나 차분한 목소리가 말을 걸었다.

 

 이 그림이 마음에 드시나 봐요.”

 

 생글거리는 얼굴이 익숙하다. 전시회 기사에 실린 사진에 있던 화가의 자녀 중 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코가미는 대답 없이 살짝 머리만 숙여 인사했다.

 

 항상 폐관 직전에 오셔서 이 그림만 보고 가시는 분 맞죠?”

 

 꿰뚫어보는 무미건조한 말에 그는 생각할 틈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의 귀가 산딸기 마냥 붉어졌다. 아무렇지 않게 그림으로 주의를 돌린 남자를 여전한 표정으로 주시하던 여자는 대뜸 앞의 그림으로 손을 뻗었다. 다소 거친 손길로 액자를 붙잡더니 남자가 무엇을 하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벽에서 분리해냈다.

 

 드릴게요.”

 

 여자는 특유의 생글거림을 유지하며 말했다.

 갈 곳을 잃은 시선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턱이 눈에 띄게 굳었다. 주머니 속에서 머뭇거리던 손이 바깥으로 나오긴 했지만 허공에 멈춰서 방향을 잃었다. 움찔거리는 손앞에 억지로 액자를 들이민다. 이 상황에 알고 싶은 건 여러 가지였지만 들을 수 있는 답은 한정되어있다는 걸 은연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코가미는 질문하려고 머리를 굴렸지만 입만 달싹일 뿐 생각이 뒤섞여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그림이 아니에요.”

 

 다시 한 번 움직임이 멈췄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자마자 새로운 사실이 귓속을 파고 들어 일시적으로 정신을 흩트려 놓는다. 안타까운 남자의 상태는 고려하지도 않고, 여자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폐관해야 돼요. 코가미는 어느 새 미술관 밖에 있었다.

 어떻게 집까지 그림을 들고 왔을까. 차가 있지만 미술관에는 가져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걸어왔을 리는……. 몽롱함에서 한순간 벗어나자 코가미는 제 손에 들린 그림 속 여인을 보고 다시금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이 작품을 들여다볼 때마다 심장이 요동치는 건 처음이고 지금이고 여전했다. 그는 현존하지 않는 여인에게 반한 것이다.

 액자를 걸어둘 곳은 많았다. 삭막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집에 넘치는 것이 공간이므로. 하지만 늘 그렇듯 선택지가 많으면 고르기 어렵다. 코가미 역시, 액자를 든 채 집 곳곳을 돌아다니다 침실 벽 쪽에 조심히 세워두었다. 그 자리에서 몇 번이고 미세하게 위치를 옮기더니 겨우 손을 떼곤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세 발자국 물러나다 덜걱 침대에 걸려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그대로 그림 속 여인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애석하게도 내일은 휴무가 아니다. 특히나 오늘은 미술관에 가기 위해 할 일도 마다하고 뛰쳐나왔기 때문에 내일은 몇 배로 뛰어다녀야 한다. 지금도 해야 할 일이 있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앞으로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여가며 조기 퇴근할 이유가 사라졌다. 덕분에 일상으로 돌아가 조금은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을 터. 사실 한 달 전 그림 속 여인을 마주한 후로 그의 생활은 여러 색이 뒤섞여 흐지부지되었다. 베테랑 형사 코가미 신야가 시들기 시작한 건 분명 한 달 전, 비번 날 지인의 손에 이끌려 미술관에 끌려갔다가 장미의 뿌리속 여인을 본 날부터였다. 그 원인을 집에 데려왔으니 이제 괜찮다고 한다면 그것도 아닌 듯하다. 캔버스 속 여인에게 애정을 느끼는 것에 비례하여 심장을 옥죄는 먹먹함을 느꼈다. 분명 코가미는 이유를 알고 있다. 그럼에도 확실한 이유를 내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분간 그는 제정신으로 본업에 복귀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은 본인도 어렴풋 눈치 채고 있었지만 그렇게 염려하지는 않았다. 내일도 분명 동료에게 한 소리 듣겠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캔버스 속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녀 또한 비슷한 미소로 대답해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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