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 스위트룸
카테고리
작성일
2017. 11. 25. 16:29
작성자
순묵애빛

※ 원작 캐릭터와 자작 캐릭터가 엮이는 드림 소설

이 글은 잔혹 동화 합작에 제출할 예정이었으나 개인 사정으로 인해 취소하였기 때문에 미완성 상태로 올립니다.

 

 

 

 

 

 

 

* 이 글은 한국 영화 “헨젤과 그레텔(2007)”을 모티브로 썼습니다.

 

 

 

 

 

 

 

 

 

 숲은 몹시 추웠다. 두 사람만의 여행을 계속 해온 지 꽤 되었지만 이렇게 추운 곳은 없었다고 코가미는 말했다. 그들은 정착할 곳을 찾고 있었고, 머무를 만한 장소를 불과 얼마 전에 찾았다. 이동을 함께 했던 무리가 알려줘서 꽤 신뢰할 만한 정보라고 생각했건만 며칠을 가도 그들이 말했던 마을은 나타나지 않았다. 돌아가 되묻고 싶어도 갈수록 날씨가 험악해져서 한 시라도 빨리 머물 곳을 찾아야 했다.

 눈. 끔찍하리만치 차가운, 소름끼치는. 소설 속에선 환상적인 묘사가 아름다움을 말해주었지만 론은 어릴 때부터 눈이 싫었다. 눈은 지금의 두 사람에게 있어선 하얀 쓰레기나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추웠다. 흩날리는 눈의 우아함은 고통스러운 추위만 더 증폭시키는 듯 했다.

 날카로운 바람결이 살갗을 벤다. 최대한 바람을 피하며 서로에게 의지해 하얀 길을 지난다.

 

 

 

 “여기서 뭐하는 거야?”

 

 

 

 코가미는 본능적으로 론을 뒤로 숨겼다. 그들 앞에 나타난 건 두 사람 못지 않게 둘둘 싸맨 어린 아이 두 명이었다. 아이들은 경계하는 대신 멀뚱멀뚱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코가미 뒤에서 어리둥절 하고 있던 론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눈에 띄게 느려진 움직임으로 가만히 눈만 껌뻑이던 그녀는 키가 작은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웃어주었다.

 

 

 

 “남쪽에 작은 마을이 있다고 해서 가는 중이었어. 사흘 정도 남쪽으로만 갔는데 도통 보이질 않네. 어떻게 가는지 아니?”

 

 

 

 론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코가미는 여전히 론 앞에 굳건히 선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론과 눈이 마주쳤던 여자아이가 빠르게 고개를 돌려 제 손을 잡고 있는 남자 아이를 쳐다보았다. 모자와 목도리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불안한 빛을 띠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거기라면 데려다줄 수 있어.”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의 손을 세게 붙잡는 듯 했다.

 

 

 

 “근데 지금 가면 다같이 얼어 죽을 테니까 우리 집으로 같이 가자. 눈 그치면 데려다줄게.”

 

 

 

 아이는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코가미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지만 론이 뒤에서 가자고 속삭이는 바람에 발을 뗄 수밖에 없었다. 앞에 아이들이 푹푹 꺼지는 하얀 바닥 때문에 속도가 많이 느렸는데 코가미는 그 보폭을 맞춰 간격을 유지했다. 론의 손을 잡고 이끄는 손길은 부드러운 반면, 경계하느라 날을 세운 눈엔 날카로운 빛이 서렸다.

 보폭을 늘려 훌쩍 옆으로 따라온 론이 속삭였다. 어쩔 수 없었다는 거 아시죠? 작은 속삭임은 금방 바람에 찢어져 사라졌다. 잔뜩 경계하고 있는 그가 듣긴 한 건지 헷갈릴 만도 한데 론은 미련 없이 걸음을 늦춰 다시 뒤로 물러났다.

 

 

 

 

 

 

 작은 아이들을 따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큰 건물이 두 사람을 반겼다.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고풍스러운 저택은 오래되어 보였지만 칼바람에도 끄떡 않는 걸 보니 꽤 튼튼해보였다. 깊은 숲속에 이런 저택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두 사람은 멍하니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뭐해, 안 들어오고.”

 

 

 

 여자아이를 먼저 들여보낸 남자아이가 말했다. 아기자기한 조명이 걸린 문 옆에서 아직까지 울타리 밖에 서있는 그들을 가만히 주시했다.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코가미가 순간 입을 달싹이자, 론이 그의 손을 놓으며 먼저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남자아이는 론이 발을 떼자 문을 열어둔 채 안으로 들어갔다.

 

 

 

 “론.”

 “쉿, 일단 들어가요.”

 

 

 

 가라앉은 무채색 눈이 불안한 빛을 띠었다. 녹색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론은 추위에 얼어버린 듯 가만히 있다가 부드럽게 웃으며 어린 아이를 달래듯이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요. 걱정되는 건 저도 마찬가지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당분간은 얌전히 따르는 게 좋겠어요.”

 

 

 

 론 역시 자신의 방법대로 경계했던 건 코가미도 알고 있다. 몇 년 전에 참혹한세상에 발을 들인 본인보다 유년기를 전쟁터에서 보낸 그녀의 말을 따르는 게 맞다 생각한다. 게다가 론은 보호받기는커녕 체격이 훨씬 큰 남성을 상대할 정도로 신체 능력이 뛰어나다. 오랜 시간 옆에서 봐 온 만큼 신뢰하고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코가미가 걱정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론, 부탁이니 무리 하지 마세요. 혼자 해결하려고도 하지 마시고요.”

 

 

 

 위험한 상황이 오면 제 안전은 뒷전으로 미루고 행동한다는 점이다.

 무겁게 건넨 말에 론은 수줍게 웃었다. 그녀는 이제야 발을 뗀 코가미의 손을 잡고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자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지는 온기에 두 사람은 동시에 걸음을 멈추었다. 얼마 만에 느끼는 아늑함인지. 눈바람을 피할 곳만 찾고 있던 그들은 유토피아에 온 것 같으리라. 론은 저절로 풀어지는 표정에 사르르 미소 지었다.

 안으로 들어갈 생각도 못 하고 몇 분을 서있었을까. 작은 대화가 들리더니 많은 발소리가 파도치듯이 들려왔다. 여전히 경계하던 코가미를 당혹케 한건 달려오는 네 명의 어린 아이들 때문이었다. 문 앞에 그다지 오래 서있진 않았지만 새 손님을 기다리던 아이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우르르 몰려나온 것이다.

 

 

 

 

 

 “왜 이렇게 안 들어와? 기다리다 지쳤잖아!”

 “밖에 엄청 추운데 얼마나 밖에 있었어요?”

 “이 사람 머리가 하예!

 “막 저녁 먹으려고 했는데 시간 잘 맞췄네!”

 

 

 

 여기까지 안내한 남자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같이 왔던 여자아이는 저 뒤에서 지켜만 보았다. 갑자기 쏟아지는 목소리 때문에 혼란스러운 두 사람이 이도저도 못 하고 있을 때 또 다른 목소리가 아이들을 제지했다.

 

 

 

 “불편해하시잖아. 다들 자리로 돌아가.”

 

 

 

 마구잡이로 들떠있던 아이들이 놀랍게도 빠르게 진정을 되찾고는 나왔던 곳으로 사라졌다. 폭풍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 마냥 서있는 두 사람에게 여자아이는 다정한 어조로 말했다.

 

 

 

 “죄송해요, 손님이 오랜만이라 다들 많이 들떠있네요. 얼른 들어오세요, 막 식사 준비가 끝난 참이에요.”

 

 

 

 공손한 태도로 말하며 아이는 그들을 거실로 이끌었다. 길게 늘어선 테이블은 아이들과 두 사람이 앉고도 남을 정도로 자리가 많았다. 앉아서 먼저 식사를 하고 있던 아이들은 코가미와 론이 들어서자 잔뜩 기대에 찬 얼굴을 했다. 아이들은 나란히 앉으라며 자리를 안내 해주고 그릇과 식기도구를 건네주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해낸 것처럼 서로 마주보고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뭐 하느라 늦게 들어왔어?”

 

 

 

 그들을 안내 해준 남자아이가 뒤늦게 다른 곳에서 들어왔다. 터벅터벅 걸어와 코가미 맞은편에 앉더니 다소 퉁명스럽게 묻는다. 코가미는 대답하지 않았고, 론은 대신 은은한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남자아이는 두 사람을 번갈아보다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포크를 들었다.

 

 

 

 “식으면 맛없어요, 어서 드세요.”

 “독이나 약 탄 거 아니죠?”

 

 

 

 갑작스럽게 론이 웃는 얼굴과 나긋한 목소리로 어울리지 않는 섬뜩한 질문을 던졌다. 당황한 코가미가 빠르게 아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아이들의 눈이 커졌다.

 

 

 

 “혹시나 해서. 세상이 좀 흉흉해야지.”

 

 

 

 론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덧붙인다.

 아이들을 제지했던 여자아이만 입을 열었다.

 

 

 

 “이해해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수상한 건 절대로 넣지 않았어요. 증명할 게 없어서 믿기 힘 드실 수도 있겠지만…….”

 

 

 

 론은 여자아이의 눈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은 이질적일 만큼 평온했다.

 

 

 

 “알겠어요.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즐거운 시간일 텐데 분위기를 망쳐서 미안해요.”

 

 

 

 다들 계속 들어요. 가장 먼저 움직인 건 론이었다. 싸늘해진 분위기와 별개로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먹기 시작했다. 코가미는 다른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손을 움직이고서야 식기를 들었다.

 이런 쪽으로는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코가미는 몇 년 동안 그녀를 봐왔지만 아직 확신을 못 한다. 본인이 그렇듯 론 역시 그에게 털어놓지 않은 본성이 있을 것이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치고 들어올 때마다 놀라는 건 어쩔 수 없다.

 잠시 동안 달그락 거리는 소리만 들려올 때, 론은 왼쪽 소매가 당겨지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남자아이와 밖에 나왔던 자그만 여자아이가 소매를 잡고 조용히 앉아있었다. 식사를 다 했는지 식기는 모두 내려놓은 채로, 아이는 론이 고개를 갸웃 거리며 시선을 맞춰오자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름이 뭐야?”

 “응? 이름?”

 

 

 

 론은 혼자 생각하다가 코가미를 바라보며 눈으로 물었다. 말해줘도 되죠? 코가미는 시선을 옮기고 생각에 잠겼다. 지금은 자유로운 상태지만 코가미와 론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시빌라에 쫓기는 입장이었다. 겨우 수사망에서 빠져나와 자유로워졌지만 방심할 수도 없는 노릇. 하지만 이미 그들을 추적하는 데 수 개월을 소비했다. 드넓은 해외에서 결국 행방이 묘연해진 두 사람을 찾기 위해 인력과 시간을 더 낭비할까, 효율을 따지는 시빌라가?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코가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겠지. 론도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끄덕이며 다시 아이를 바라보았다.

 

 

 

 “로니 드루.”

 “로니?”

 “응. 로니.”

 “로니. 이름 귀여워.”

 

 

 

 코가미는 식사를 하며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소리가 끊기자 그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론의 어깨가 굳어있는 걸 보고 왜 그러나 싶어 이름을 부르려는데 갑자기 몸을 홱 돌려 코가미를 바라본다. 당혹감으로 물든 눈은 어쩐지 촉촉이 젖었고 앙 다문 입술은 바르르 떨렸다. 미묘한 차이지만 그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걸 알아차렸다. 그가 묻기도 전에 론이 입을 달싹였다. 하지만 목소리를 내뱉진 못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다. 이름이 귀엽다는 칭찬을 받은 건 그가 기억하기로는 처음이었다. 이름 칭찬을 받은 게 그렇게나 기쁜지 쉬이 말을 하지 못하는 연인을 코가미는 애정 가득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다.

 

 

 

 “당신은 이름이 뭐예요?”

 

 

 

 어느 새 다가온 다른 남자아이가 물었다. 코가미는 머뭇거렸지만 이내 이름을 알려주었다.

 

 

 

 “와, 특이한 이름이다.”

 “저는 델이에요.”

 

 

 

 코가미의 이름을 물었던 남자아이가 말했다. 갑자기 시작된 자기소개에 아이들도 하나같이 제 이름을 말하려고 했다.

 남자아이는 루크, 아벨, 델이 있고 여자아이는 필리아, 에밀리, 샌디, 루디가 있다. 가장 나이가 많은 루크는 론과 코가미를 이곳으로 데려온 사람이다. 루크와 같이 왔던 아이는 에밀리. 가장 작고 어리다. 온화한 카리스마로 아이들을 통솔했던 아이는 필리아라고 했다.

 의도치 않은 자기소개 덕분에 더욱 친분이 쌓였는지 이제 론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있었다. 부드러운 미소도 한 몫 한 듯. 아이들과 론은 넓은 거실 한 쪽에 위치한 소파에 앉아 즐겁게 얘기를 나누었다.

 코가미는 건물 안을 둘러보고 싶어 했다. 아직 경계를 거두고 있는 게 아니라서 퇴로라거나 숨을 곳, 누군가 침입할만한 곳 등을 알아두고 싶었다. 꽤 크지만 길을 잃을 것 같지는 않아서 혼자 가볼까 했지만 남의 집을 헤집고 다니면 누구라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기에 그는 두리번거리다가 시선이 마주친 필리아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필리아는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현관과 반대편에 있는 복도로 나서니 여러 개의 문과 계단이 있었다. 어쩐지 삼엄한 미로처럼 느껴지는 복도를 신중히 살피는 그에게 필리아가 물었다.

 

 

 

 “동양인이시죠?”

 “응. 왜?”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이 맞나 해서 물어봤어요.”

 

 

 

 묻는 이유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던 듯. 코가미의 간결한 대답과 질문에 간단히 대답해주고는 문을 선뜻 열어 보여주며 설명해주었다. 누구의 방, 어디는 지하 창고로 가는 문, 현관으로 갈 수 있는 다른 복도, 화장실, 욕실 등. 루크의 방도 있었는데 함부로 들어가면 누구든 혼난다고. 2층은 대부분이 누군가의 방이었고 코가미와 론이 쓸 방도 있었다. 이 건물에 머물다가 가는 손님방이라고 했다.

 

 

 

 “원래는 그냥 빈방이었는데, 여길 거쳐 가시는 분들이 많아졌거든요. 그래서 따로 마련해뒀어요.”

 “위험할 텐데.”

 

 

 

 코가미의 근심어린 말에 필리아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푸스스 웃었다. 어리둥절한 그에게 작은 사과를 전했다.

 

 

 

 “조금 의외네요. 첫 인상이 남 걱정해주는 사람으론 안 보였어요.”

 

 

 

 하긴, 잔뜩 굳어있었을 것이다. 들어오기 전부터 경계하느라 표정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때문에 아이들이 코가미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았던 거겠지. 그에 반해 론은 상냥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익숙하게 감정을 숨기며 무해한 사람을 연기하는 론이 새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코가미였다.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았어요, 지금까지는. 지금 세상이 어떤지 잘 알고 애들만 있는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지도 잘 아는데 애초에 숲에서 여길 찾기도 쉽지 않고 함부로 숲을 들어오는 사람은 없거든요. 가끔씩 위험해져도 루크가 알아서 해줬구요.”

 “루크?”

 “네. 우리 믿음직한 경비원이에요. 지금도 보초 서러 나갔을 거예요.”

 

 

 

 루크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자리를 비웠다. 필리아 말대로 주변을 살피러 나간 듯 했다.

 

 

 

 “혼자서 너희들과 이곳을 지킨다고?”

 “루크는 누구보다 이 숲과 건물을 잘 알아요. 루크가 잘 해왔다는 건 지금까지 우리가 무사히 살아있다는 걸로 증명할 수 있어요.”

 

 

 

 자랑스레 말하는 필리아에게 코가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무리 외진 숲 속에 있고 숲에 사람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도 위험한 상황은 이미 여러 번 발생했다. 그럼에도 이곳의 아이들이 무사한 건 필리아의 말대로 루크가 잘 해줬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운이 좋았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든 간과할 수는 없기에 코가미는 루크를 좀 더 경계하기로 했다. 아마도 성인 남성인 코가미와 대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이다.

 

 

 

 “먼지가 많네.”

 “날씨가 추워지고부터 손님이 전혀 오지 않았거든요. 두 분이 올 겨울 첫 손님이에요.”

 “그럼 이런 겨울엔 식량은 어디서 조달해?”

 “지하창고에 모아둬요. 웬만한 건 거기 다 있고 혹시 모자란 게 있으면 루크가 가져다줘요.”

 

 

 

 아무리 숲을 잘 안다고 하지만 혼자서 숲을 나가 다른 곳에서 조달해오는 건 쉽게 떠올릴 수 없었다. 생각에 잠긴 코가미가 선뜻 먼지 쌓인 선반에 손을 올렸다.

 

 

 

 “건들지 마세요. 지저분해요. 제가 청소해놓을 테니 거실에 계세요.”

 “도와줄게.”

 “괜찮아요. 금방 할 수 있어요.”

 

 

 

 코가미가 꼼짝 않고 자리에 서있자 필리아가 방 밖으로 이끌었다.

 

 

 

 “거실에 가보세요. 애들은 손님이 해주는 얘기를 듣고 싶어 하거든요. 이미 로니가 많이 시달렸을 거예요.”

 

 

 

 멋쩍은 표정으로 말하고는 어서 가보라며 문을 살짝 닫았다. 코가미는 노란 조명 빛, 덜컹덜컹 흔들리는 창문 소리와 함께 복도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무엇을 할까. 건물을 좀 더 살펴볼까. 밖에서 보기에도 건물은 2층이었고 2층엔 방과 기껏해야 화장실 밖에 없었다. 조금씩 본 방에 별 건 없어보였고 내려가서 지하창고에 들어가 볼까 했지만 지금은 관두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여정과 오늘 처음 루크와 에밀리를 보고 나서 지금까지 날을 세운 경계심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많이 지친 상태였다. 코가미는 잠시 쉬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거실로 향했다.

 론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이야기꽃을 잔뜩 피우고 있었다. 지치지도 않는지 마구 질문을 던지는 아이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면서. 에밀리가 가져다 준 물을 마시던 론은 코가미를 발견하곤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오셨네.”

 “주인공?”

 “코가미 씨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 한 편을 쓰고 있었어요. 이제 막 끝난 참인데, 본인이 실제 경험담을 들려주는 게 어때요?”

 “동화라면서요. 애들 동심은 어떡합니까.”

 “시시하대요. 생생한 얘길 듣고 싶다고 하는데 타이밍 좋게 본인이 오셨네요.”

 “어떤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까?”

 

 

 

 코가미와 론이 다정히 얘길 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던 아이 한 명이 뜬금없이 물었다.

 

 

 

 “둘이 부부야?”

 

 

 

 론은 말을 많이 해서 목이 타는지 물을 마시다가 거하게 사레가 들려 기침을 했다. 옆에 있던 에밀리가 등을 두드려 주었다.

 

 

 

 “아, 아니야.”

 “그러면?”

 “연인.”

 

 

 

 진정되지 않아 더듬거리는 론을 대신해 코가미가 대답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저마다 눈을 빛내며 이번엔 그에게 몰려들었다. 사실이지만 다소 장난스럽게 얘기한 건데 아이들이 이런 식으로 반응하니 당황한 눈치다. 그새 론은 얼굴이 새빨개져있었다. 기침 때문인지 부끄러워서 그런 건지.

 

 

 

 “공주님이랑 왕자님이야?”

 “아니면 기사님이랑 공주님!”

 “황제 폐하랑 시녀일 수도 있어!”

 “얘들이 동화를 너무 많이 봤나 봐요…….”

 “제 생각엔 판타지 소설을 많이 본 것 같은데요.”

 

 

 

 코가미는 아마도 부끄러워하는 론을 주시하며 능글맞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론은 덕분에 목 언저리까지 빨개졌고 결국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아이들은 그런 론을 놀리기도 하고 코가미에게 다른 이야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론 옆에는 에밀리 밖에 없었는데 아이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론에게 연신 괜찮은지 물었다. 얼굴이 삽시간에 붉어져서 아픈 줄 알았는지 맑은 눈에 걱정이 서렸다. 론은 겨우 진정하고는 에밀리에게 괜찮다고 해주었다. 상냥하구나, 에밀리는. 아이는 배시시 웃었다.

 

 

 

 “결혼은?”

 “아름다운 결혼식은 올렸어요?”

 “아니.”

 “왜 안 했어요?”

 “안 한 게 아니라 못 했지.”

 

 

 

 코가미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론 또한 조금 서글픈 얼굴이다. 두 사람의 분위기에 아이들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럼에도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방 정리를 마친 필리아가 계단을 한 칸만 늦게 내려왔더라면 물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방 정리 다 했어요. 이제 올라가셔도 돼요.”

 “안 돼, 아직 듣고 싶은 얘기 많단 말이야.”

 “조금만 더 있다가 가요.”

 “너희도 그만 자야 돼. 씻고 양치질 해.”

 

 

 

 두 사람을 붙잡으려는 아이들을 필리아는 간단히 제지했다. 론은 고맙다는 눈인사를 해보이곤 코가미의 손을 잡았다. 방을 알고 있는 코가미가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필리아의 팔에 막혀 저마다 떼쓰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손님방은 아까와 비슷하지만 먼지라곤 티끌도 없었고 가구 자리도 몇 개 옮겨졌다. 청소하면서 환기도 했는지 살을 에는 한기가 느껴졌다.

 론은 생각보다 양호한 방 상태에 감탄하며 가장 먼저 침대로 다가갔다. 두 사람이 충분히 누울 수 있는 큰 침대엔 깔끔한 시트와 더불어 두껍고 포근한 이불이 있었다. 그녀는 호기롭게 외투를 벗어 한 곳에 내려놓고는 옆에서 망설였다. 코가미는 방 바로 맞은편에 욕실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론은 수줍게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창문은 여전히 크게 덜컹거렸다. 바깥의 눈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해가 져서인지 아까보다 더 거세진 것 같기도 하다. 내일이면 그칠까? 이들이 가고자 하는 곳은 여기가 아니라 좀 더 먼 곳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무엇보다 이곳에 오자마자 느낀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느낌이라 코가미는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의 상태가 갈수록 날이 서고 있다는 걸 론은 일찍이 깨달았다.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 본인의 생각대로 움직여야 할 때는 설령 아군이더라도 계획을 말해주지 않는다. 신뢰하지 못 하는 건 아니다. 대부분 본인의 역할만 생각해두기 때문이다. 특히 코가미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해왔기 때문에 론은 지금껏 말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코가미가 직접적으로 요청할 때를 제외하면. 이번에는 그를 진정 시키기 위해서 뭐라도 말해줘야 했다. 론은 제 머리를 다 말릴 때까지 침대에 눕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던 코가미에게 다가갔다. 그는 제 손을 살그머니 잡아오는 론을 피하지 않고 고개만 돌려 시선을 마주했다.

 

 

 

 “필리아와 얘기를 나누지 않았나요?”

 “안 그래도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라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코가미는 아까 전 필리아와 이곳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들려주었다. 대부분 루크에 대한 것이었다.

 론은 얘기를 모두 듣고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모두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지금 당장 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시간이 걸릴 거예요. 아이들에게 들은 게 있거든요. 하루 정도는 쉬도록 해요. 며칠 간 많이 피곤했잖아요.”

 

 

 

 코가미와 다르게 론은 굉장히 차분했다. 자칫하면 매복당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건지. 하지만 덕분에 그의 긴장도 어느 정도 사그라지는 듯 했다.

 

 

 

 “그러고 보니 애들을 굉장히 좋아하시나 봅니다.”

 “음, 그렇진 않아요.”

 

 

 

 론은 볼을 긁적이며 웃는다. 호기심 섞인 그의 시선을 피하는 듯 하며 먼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며칠 동안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졸음이 이제야 쏟아져온 듯 론은 바로 눈을 감았다. 코가미도 겨우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눈을 붙였다. 불안과 근심이 가신 건 아니지만 갑자기 밀려드는 피로를 풀고 싶었다. 품으로 파고 드는 연인의 온기를 느끼면서 그는 천천히 무의식 속으로 빠져들었다.

 

 

 

 

 

 

 

 

 

 

 

 

    첫째 날,

 

 

 창밖으로 빛이 새어들어 왔다. 분명 아침인데 다소 어둡다. 세찬 바람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눈이 그치기는커녕 어제보다 더 내리는 듯 했다.

 코가미는 작은 대화 소리에 깼다. 그가 몸을 일으켜 바닥에 발을 딛고 일어날 때까지 꿈속을 여행하던 론은 쾅, 큰 소리가 나자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어정쩡한 자세로 멍하니 굳은 론을 대신해 코가미가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잡았다. 벌써 위험한 상황이 온 건 아닌지. 복도엔 아무것도 없어서, 코가미는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계단으로 걸어갔다.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다른 큰 목소리도 들렸다. 필리아였다.

 

 

 

 “건드리면 안 된다고 했지!”

 

 

 

 필리아가 아이들을 혼내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그런 상황은 아닌 것 같아서 코가미는 아래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무슨 일이야?”

 “아, 죄송해요. 소리가 너무 컸죠.”

 

 

 

 거실은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웬 커다란 나무가 쓰러져 있는가 하면 형형색색의 장식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론을 깨울 정도로 큰 소리가 난 건 이 나무가 넘어지면서 난 소리였던 듯.

 필리아에게 혼나던 아이들이 서둘러 수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 몸보다 두 배는 큰 나무를 쉽게 세울 수 없어서 코가미가 나섰다. 필리아가 하겠다고 했지만 그녀도 무리였을 것이다. 나무가 꽤 무거웠다. 신기하게도 망가지지 않은 나무를 넘어지지 않게 잘 세워주고는 식사 준비가 곧 끝난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 2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방문을 열고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론이 보였다.

 

 

 

 “무슨 일이었어요?”

 “장식으로 쓸 큰 나무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넘어뜨렸나봅니다.”

 

 

 

 론은 그제야 한시름 놓은 얼굴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코가미는 축 처지듯 앉아있는 그녀의 몽글몽글한 머리를 부드러운 손길로 정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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