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 스위트룸
카테고리
작성일
2017. 7. 22. 23:19
작성자
순묵애빛

 

 

 

캐릭터, 코가미 신야(사이코패스)

스타일, HL 헝거게임

 

 

 

 

 

※ 원작 캐릭터와 자작 캐릭터가 엮이는 드림 소설

※ 소설 "헝거 게임" 세계관 적용

※ 캐붕 주의

 

합작 페이지

 

 

 

 

 

 

 

 

 

 

 

 따분하게 눈만 굴렸다.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관심이 없었다. 질린 표정으로 눈만 데룩 굴렸다. 어차피 이번에도 그 사람은 오지 않을 거잖아. 유일하게 시작 전부터 시선이 가는 12구역 조공인들을 바라본다. 올해는 나이대가 비슷하다. 아마, 여자 아이 쪽이 더 어린 것 같다. 작년에는 열여덟 살 여자 아이가 열두 살 남자 아이를 미끼삼아 세 명을 죽였었지. 그래봤자 셋째 날 2구역 조공인에게 당했지만. 관심 어린 시선을 금방 거두고는 제 눈앞에서 얼쩡대는 여럿 스폰서와 멘터들 사이로 이리저리 오고가는 조공인을 눈대중으로 살피며 제 나름의 값어치를 매긴다. 거의 매년 의무적으로 헝거 게임에 참가하는 그녀에겐 지루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여흥거리였다.

 게임 메이커의 딸인 론의 눈은 꽤 정확했다. 그녀가 응원하는 조공인은 십중팔구 우승할 정도다. 그들은 하나같이 정신력과 생존력이 우수했는데, 론은 결과를 이미 보고 온 것처럼 참가할 때마다 그 해 우승자만 밀어주었다. 헝거 게임만을 위해 훈련하는 프로 조공인들 조차 초반부터 탈락하는 경우가 많고 게임 진행 동안 받은 스트레스로 성장하는 사례도 있어서 그것을 게임 시작 전부터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론은 그것을 보란 듯이 쉽게 해냈다. 모두가 탈락하겠다고 입 모아 말한 어린 조공인이 론의 후원품을 받아 우승한 사례도 있다.

 그렇기에 멘터는 제 구역 조공인이 눈에 들도록, 다른 스폰서들은 그녀가 점찍은 조공인이 누군지 알아내려고 매년 론 옆에서 아첨을 떨어댄다. 론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만. 설득에 응해줄 생각도 없거니와 우승자를 알려주어서 어머니와 다른 게임 진행자들이 열심히 만든 헝거 게임을 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스폰서와 멘터 사이에서 “하얀 스폰서”로 통할 정도로 새하얀 복장을 고집하는 그녀는 이번에도 주변 색에 쉽게 물드는 순백색 머리에 어울리게 치장했다. 항상 앉는 자리에서 시큰둥한 얼굴로 홀로그램 화면을 응시했다. 화면 속에선 한창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었다. 기대와 지지를 받는 조공인들이 여럿 지나갔지만 론의 무관심은 여전했다. 그녀라고 항상 이렇게 무기력한 모습으로 게임을 관람하진 않지만, 최근 6년은 자주 이랬다. 헝거 게임이 질린다거나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기대하는 게 이뤄지지 않아 실망으로 시작하는 것뿐이다.

 마지막 차례인 12구역 조공인들의 인터뷰를 보는 둥 마는 둥, 옆에서 조잘거리는 스폰서와 멘터의 아첨을 듣는 둥 마는 둥, 론은 테이블에 놓인 칵테일을 홀짝이며 멍하니 시선만 갖다 두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이미 우승자라서 보려면 매년, 멘터가 되어 헝거 게임에 참가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멘터로 참가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언제든지 볼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지만 그건 그는 물론이고 론 본인도 매우 싫어할 것이다. 그녀는 좀 더, 다른 것을 원했다.

 칵테일이 담긴 잔을 작은 원을 그려 돌리던 론은 귓가를 간질이는 나긋한 음성이 들리자 흠칫 몸을 떨었다. 삐그덕 거리는 움직임으로 뒤로 돌자, 그곳엔 7년 전 우승자가 말끔한 복장으로 서있었다.

 

 “로니, 멘터로서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잠시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습니까?”

 

 론은 잔이 떨어져 발밑에서 산산조각 나도 아랑곳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올곧게 시선을 마주해오는 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가 왜 이곳에, 하는 의문은 금방 해결되었다. 그가 방금 제 입으로 말하지 않았는가. 그는 멘터 입장으로 게임에 참가한 것이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론은 이제껏 지은 표정 중 가장 밝은 미소로 답하며 고개를 끄덕여 내밀어진 손을 잡았다. 주위에서 입술이 마르도록 아첨하던 사람들은 버려두고, 12구역 남자의 투박한 손에 이끌려 걸음을 옮겼다.

 그토록 원했던 사람. 한적한 장소로 옮기는 짧은 순간은 정말이지 매우 황홀한 시간이었다.

 

 

 

 

 

 코가미는 7년 전 헝거 게임 우승자다. 론이 생명의 은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녀에게서 큰 도움을 받았지만 코가미는 그녀가― 싫다고 딱 잘라 말하기보다는 거북하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론은 코가미를 후원해줄 때 멘터와 상의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후원품을 구매했다고 한다. 적절한 타이밍에 필요한 물품을 받아서 유용하게 사용했어도 코가미는 그녀에게서 고마움보다는 거부감을 느꼈다. 일부러 빚을 지게 한 건 아닐까 하던 찰나, 그녀가 그를 사들였다.

 우승자를 상품처럼 취급하며 막대한 돈을 받고 대여해주는 시스템은 캐피톨의 큰 수입거리 중 하나다. 물론 우승자의 의사는 중요치 않다. 거부한다면 사랑하는 이를 무차별적으로 사살하려고 하니까. 코가미는 두 번이나 팔려나갔다. 모두 론에게로. 다행이라고 할지, 소문으로 들었던 역겨운 일은 당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끈덕지게 지원해줬던 이유를 물었지만 물을 때마다 론은 그러고 싶었다고만 말할 뿐, 다른 말은 해주지 않았다. 코가미는 또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캐피톨 사람을 적대시하고 론과 대화하기도 꺼리던 그가 이번에 멘터로 참가하여 먼저 말까지 걸어온 이유는 당연하게도, 스폰서를 얻기 위해서다. 그 사실을 황홀한 시간동안 자각한 론이지만 그가 직접 설명해줄 때까지 아는 체 하지 않았다. 그와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고, 이 예상치 못한 만남을 즐기고 싶었다. 그 생각을 알 리 없는 코가미는 한적한 자리에 마주보고 앉아 미처 분위기를 들이마실 틈도 없이 입을 열었다.

 론은 샐쭉 웃으며 시선을 아래로 굴렸다. 그가 생각하는 본인은 거북한 사람이고, 스폰서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곧바로 본론에 들어가니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눈을 맞추지 않고 고개만 몇 번 끄덕일 뿐, 제대로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아서 코가미는 론을 불렀다. 바닥만 굴러다니던 시선이 천천히 올라가 다시 그와 마주했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말하기 싫어하는 것처럼. 코가미는 마른 침을 삼켰다. 하얀 스폰서는 굉장히 까다로운 인물이라고 들었다. 열심히 아첨하고 설득을 해도 들어줄까 말까 한 사람인데,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을 내세워 너무 부주의했나 싶었다. 코가미는 그녀의 생각을 읽느라 입을 다물었다. 시선은 고정된 채로 눈만 깜빡이기를 몇 번. 론은 슬쩍 시간을 확인하곤 결심한 듯 말했다.

 

 “서로에게 억지를 좀 부려볼까요?”

 “예?”

 “후원 해드릴게요, 얼마든지.”

 

 아직 제대로 말도 못했다. 갑작스럽게 목적을 달성하자 그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생소한 반응에 론은 히죽 웃었다. 입만 달싹이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그의 앞에 손가락 하나를 펴보였다. 그제야 코가미는 평소의 침착한 모습으로 돌아와 말을 기다렸다. 이번엔 대가가 있는 거래다. 불안해지는 마음은 이곳에 와야만 했던 이유를 떠올리며 가라앉혔다. 모든 일은 아카네와 카가리를 위해서다.

 

 “대신, 코가미 씨는 하루에 한 번씩 저에게 무엇이든지 요구할 수 있어요.”

 “조건은 뭡니까?”

 

 론은 굳은 표정으로 본론을 요구하는 그를 보고 생글생글 웃다가 볼을 붉혔다. 우물쭈물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더니 곧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연인이…… 되어주세요.”

 

 녹색 시선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침묵 속에서 낮은 목소리가 한 박자 늦게 떠올랐다.

 

 “구체적으로 어떤 연인입니까?”

 “안 놀라셨어요?”

 “놀랐습니다만 제가 거절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 말은 수락한다는 거죠?”

 

 코가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제안한 게 아니었는지 자신보다 놀란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론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애인 연기를 하라는 소리다. 멘터를 자처했을 때부터 어떤 희생이든지 각오하고 있었기에 그리 동요하지는 않았다.

 론은 주변이 밝아지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활짝 웃었다. 어깨 위로 단정히 정리된 머리카락이 들썩였다. 기쁨을 감추지 못하던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 가요. 하고 싶은 게 잔뜩이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게 있어요.”

 

 손짓 하는 바람에 코가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커다란 문 쪽으로 다가가자 주변에 포진해있던 제복 입은 사람 서너 명이 모여들었다. 아마 그녀의 호위였던 듯. 앞서만 가던 론은 호위가 따라붙고 관리인에 의해 문이 열리자 코가미의 옆에서 나란히 걸었다. 움직이면서 옷깃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붙은 두 사람이지만 손을 잡거나 하는 스킨십은 하지 않았다. 코가미는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지만 론은 할 생각이 없는지 서툴게 보폭을 맞추는 걸음을 따라 걸었다. 손이 살짝 스치자, 그를 바라보고 수줍게 웃기만 할 뿐. 코가미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옷을 갈아입으란다. 먼저 해야 될 게 있다면서 끌고 온 사람은 눈이 아픈 색으로 치장한 사람들과 옆방으로 들어갔다. 익숙하지 않은 양복을 입은 것만으로도 답답했는데, 캐피톨 사람들이 입는 괴상한 옷을 입을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코가미는 관리인과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그가 싫어하는 스타일로 한껏 치장한 두 사람이 서있었다. 그들은 옷을 가져오며 론이 직접 밋밋한 스타일―충분히 화려하고 고급스러웠다―로 부탁한 거라고 했다. 이 캐피톨에서 이런 복장은 비웃음거리 밖에 되지 못할 텐데, 멘터인 코가미 단 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게 매우 대단한 것처럼 얘기했지만 그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 옷을 갖춰 입은 코가미는 거울 속 자신을 보고 드물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거울에 비친 남자는 채도 낮은 군청색으로 포인트를 준 검정색 베스트와 하얀 셔츠, 선이 예쁜 슬랙스를 입고 있었다. 심플한 듯 화려한 정장이었지만 캐피톨 사람들은 눈길도 주지 않을 만큼 얌전했다.

 머리 손질과 옅은 화장까지 마친 코가미는 여러 이유로 감탄을 금치 못하는 두 사람을 뒤로 하고 관리인의 안내를 받아 밖으로 나갔다. 관리인은 론도 데려오겠다고 말한 뒤 옆방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동안 코가미는 여기저기 세워진 장식용 유리에 제 모습을 비춰보았다. 예상치 못한 평범한 옷이다. 설마 캐피톨 사람이 이런 식의 옷을 준비할 줄은 몰랐다. 이쪽 사람들은 모두 해괴망측한 형형색색의 옷을 입지 않았던가. 그녀가 정말 캐피톨 사람인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어느 새 투명한 유리에 바짝 다가가 옷감까지 살펴보던 코가미는 가볍게 문 열리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잘 어울리네요, 코가미 씨.”

 

 론은 뒤 쪽에서 환호하는 무리의 소음을 단호하게 문을 닫아 차단하면서도 앞에 서있는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수줍게 웃으며 감상을 묻는 여성은 그와 비슷한 분위기의 평범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어깨 위에 아무렇게 흐트러졌던 머리는 하얀 목선이 여실히 드러날 정도로 올려 묶었다. 하얀 스폰서라는 별명에 걸맞게 옅은 녹색 풀잎으로 포인트를 준 하얀 드레스가 놀랍도록 잘 어울렸다.

 

 “먼저 식사를 하러 가고 싶어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간 론은 복도 끝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가만히 서있던 코가미도 정신을 차렸다.

 이제 곧 게임이 시작될 시간이다. 시작되자마자 3분의 1정도는 죽기 때문에 중요한 순간이다.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코가미는 그녀에게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중계를 보겠다고 했다. 론은 그를 물끄러미 올려보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 쪽에서도 화면으로 볼 수 있어요. 헝거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어디서든지 볼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정도는 아실 줄 알았는데. 아, 물론 후원은 곳곳에 있는 게임 진행자에게 말하면 돼요.”

 

 차분한 설명에도 코가미의 얼굴에는 여전히 근심이 남아있었다.

 론은 갈까요, 하고 재촉하듯 말했지만 참을성 있게 그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가만히 마주해오는 녹색 눈을 주시하던 코가미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론은 다시금 활짝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과감히 그의 손을 잡을 듯 하다가 소매를 검지와 엄지로 살포시 누르듯 잡았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는지 행복한 미소를 짓는 론이다.

 복도 끝을 나서자마자 왁자지껄한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코가미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조용했던 순간을 추억하듯 지나온 길을 한 번 뒤돌아보곤 먼저 발길을 돌린 론의 보폭에 맞춰 걸었다.

 모든 시선이 그들에게로 쏠렸다. 이곳에서 만큼은 확 튀는 수수한 복장과 론의 존재, 처음으로 멘터로 나서는 덕에 웬만한 조공인 못지않은 주목을 받는 코가미의 존재감이 한순간 파티장을 압도했다. 조금 굳어버린 그를 어르듯 론은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로니 씨, 인터뷰 부탁드려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스테인. 죄송하지만 오늘은 일행이 있어서요. 실례할게요.”

 

 여기저기서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한 발자국 내딛기도 힘들 정도로 인파가 몰렸지만 론은 익숙한 듯 침착하게 상황을 넘겼다. 코가미의 소매를 꾹 붙든 채로 빠르게 인파를 헤쳐 나온 그녀는 그에게 예상치 못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반쯤 장난스럽게 얘기했다. 벌써부터 힘겨워 보이는 파트너를 데리고 론이 향한 곳은 헝거 게임 중계 영상이 가장 잘 보이는 관람석이었다.

 

 “이렇게, 오붓하게 영화를 보고 싶었어요.”

 

 영화는 아니지만. 수줍게 웃으며 먼저 자리에 앉았다.

 비스듬히 놓인 의자는 눕기 편할 정도로 길고 두 사람이 앉아도 넉넉할 만치 넓었다. 앞에는 작은 탁상이 있었는데 그 위엔 여러 버튼이 있는 작은 리모콘과 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코가미가 앉자, 론은 리모콘을 들어 능숙하게 버튼을 눌렀다. 곧바로 관리인이 나타나 중계 화면을 가리지 않도록 옆에 비스듬히 섰다. 론은 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주문했다.

 코가미는 그동안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소란스럽고 낯선 곳에서 어색해 하다가도 게임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가 시작되자 뚫어져라 화면만 바라보았다. 론은 미동 없이 집중하고 있는 남자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진한 미소를 짓고는 천천히 그의 어깨에 기댔다. 그의 집중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보고 있는 사람마저 긴장하게 만들 정도로 천천히. 코가미는 론이 제 어깨에 기대어 손을 살짝 잡아오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게임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12구역 조공인 남녀 두 명은 자신이 말한 대로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배낭을 챙겨 숲으로 몸을 숨겼다. 각자 행동해도 서로를 도와줄 테지. 시작은 좋다. 초보 멘터가 한시름 놓고 한숨을 내쉴 즈음 식사가 나왔다. 관리인은 탁상에 식사를 세팅하고 조용히 물러갔다.

 

 “한동안은 조용할 테니까, 우리도 식사할까 해요.”

 

 숲으로 들어간 조공인과 시작지점에서 보급품을 두고 싸우는 조공인들이 각각 나뉘어 중계되자 론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제가 적게 먹는 편이라 이정도만 주문했는데 더 먹고 싶으면 말해요. 직접 주문하셔도 되구요.”

 

 작은 탁상 위에 올라와 있는 건 칵테일 두 잔과 아기자기한 샌드위치 몇 조각, 샐러드 한 접시뿐이었다. 캐피톨 사람은 배가 불러도 더 먹기 위해 억지로 속을 게워낸다고 하던데. 코가미는 힐긋 주위를 둘러보았다. 더 큰 탁상 여러 개를 두고, 탁상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많은 접시를 쌓는 캐피톨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에 비해 론은 샌드위치 한 조각을 천천히 베어 먹고, 샐러드를 몇 번 집어먹고 포크를 내려놓는다. 보아왔던, 들어왔던 캐피톨 사람과 큰 차이가 느껴지는 그녀가 조금 낯설기도 했다. 그의 머릿속에 론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제가 말실수를 했나요?”

 

 샌드위치를 먹으며 줄곧 화면만 바라보던 론이 시선을 고정한 채로 더듬더듬 물었다. 그제야 코가미는 자신이 그녀를 지나치게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화면을 보고는 있지만 론은 집중하지 못했다. 옆에서 거둬지지 않는 시선이 따가웠으므로 돌아보는 게 겁이 났다. 차갑게 노려보고 있을 생각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 했다. 애꿎은 샌드위치만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문화 차이를 최대한 배워뒀지만 그래도 직접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부분이 많아요. 제 말이나 행동이 코가미 씨의 가치관에 반하거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말씀해주세요.”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어투가 꼭 잘못을 반성하는 어린 아이 같았다. 그 유명한 스폰서가 보잘 것 없는 12구역 멘터에게 쩔쩔 매고 있는 것이다. 코가미는 다시 제 옆에 앉은 여인과 눈을 마주했다. 푸른 동공이 불안하게 흔들리다가 옆으로 굴러갔다. 괜스레 손등만 긁적이는 걸 보고 그는 처음으로 털어놓듯 물었다.

 

 “헝거 게임의 큰 지분을 가진 당신이 일개 멘터인 저를 배려해주는 이유가 있습니까?”

 

 서로가 억지 부리듯 한 계약도 론의 말 한 마디면 없던 일이 된다. 뭔가 더 요구하고 싶거나, 질려서 후원을 관두고 싶다면 말로 내쳐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론은 그러지 않았다. 환심을 사려고 노력해야 할 건 멘터인 코가미인데 그 반대가 된 것 같았다.

 사뭇 심각한 태도로 말해서일까, 그녀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론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코가미 씨가 캐피톨에 반감을 갖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를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건 좀 충격이네요. 그동안 다른 모습을 보여 왔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도 그렇고 그때부터의 저는 그들과 다를 바 없었나보죠?”

 

 분명 웃고 있었지만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기분이 상한 건 맞지만 그의 말에 화가 났다기보다는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후회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샌드위치를 내려두고 칵테일로 목을 축이고서야 답을 해주었다.

 

 “코가미 씨에게 미움 받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요.”

 

 옅은 호선을 그리는 얼굴엔 솔직함이 가득했다.

 코가미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못 했다고 하는 편이 맞겠지. 굉장히 의외의 대답이었다. 캐피톨 사람이 뭐가 부족하다고 12구역 사람에게 미움 받기 싫다는 건지. 그대로 굳어서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론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코가미 씨, 저를 캐피톨의 귀족이 아니라 그냥 한 명의 사람으로 생각해주면 안 될까요? 코가미 씨 자신도요. 헝거 게임에서 우승했던 코가미 씨도, 유명 스폰서로 칭송 받는 저도 입장은 다르지만 같은 사람이잖아요.”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어요. 말을 마친 론은 편안한 자세로 고쳐 앉으며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

 코가미는 아직까지 혼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뭐가 아쉬워서 이런 행동을 하는 건지. 그녀는 단지 심심해서 그러는 걸 수도 있다. 이제는 여유롭게 저를 지그시 바라보는 그녀에게 다시 질문했다. 어째서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해주길 바라는 건지. 머릿속에 낀 안개를 걷어주길 바랐건만 론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 시선 때문에 식사가 전혀 안 된다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종종 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코가미는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니었지만 일단 뒤를 따랐다. 이곳에 앉아 있어도 알 수 있는 건 없고 그녀의 말 대로 여러 시선에 시달릴 뿐이니까.

 

 

 

 

 

 

 

 

 

 

 

 

 


 

 

굉장히 재밌게 썼습니다.

합작 신청할 당시 헝거 게임 영화를 다 몰아서 보느라... 엄청 재밌게 봤거든요.

스토리가 더 있었는데 이 이상 쓰다가는 정말 장편이 되어버릴 거 같아서 오픈 엔딩 느낌으로 잘라먹었습니다.

참여하신 분, 주최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

 

 

 

+) 170903

흠.. 너무 애매하게 잘라먹었더니 던졌던 떡밥 회수도 못 했군요.

사실 생각했던 분량은 헝거게임 끝나는 것까지였습니다만.. 시간 너무 촉박..ㅋ..ㅠ

론이 코가미를 두 번이나 사들인 건 다른 캐피톨 사람이 코가미를 사려는 걸 자기가 돈 주고 대신 샀기 때문입니다.

론은 코가미가 그런 ..권력차이?를 행세하는 걸 싫어하는 걸 아니까 본인의 의지로 그를 사는 행동은 결코 안 했는데,

우승자를 사는 귀족이 어떤 행동을 할지 아니까... 음음

이거저거 달느 설정ㅇ도 많은데 흠.. 기억이 안 나네욥..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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