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 스위트룸
카테고리
작성일
2017. 12. 31. 22:27
작성자
순묵애빛

 

트위터 월간드림 12월

손가락이 얼어붙을 즈음

페이지 링크

 

 

캐릭터, 코가미 신야(사이코패스)

스타일, HL 동거au 2세

 

 

 

 

 

 

 

 

 

 

 

 

※ 원작 캐릭터와 자작 캐릭터가 엮이는 드림 소설

※ 원작 설정 일부 각색

 

 

 

 

 

 

 

 

 

 

 

Photo by Noah Silliman on Unsplash

 

 

 

 아홉 번째 겨울이 왔다. 바깥에서 숨만 뱉어도 입김이 나오는 그런 날씨가 되었다. 문득 녹색 눈이 도륵, 창밖으로 굴렀다. 한낮인데 하늘이 흐리다. 눈이 오려나. 유토는 생각했다. 보기 드문 종이책의 표지를 검지로 슬슬 쓸어내던 아이는 주변이 소란스러운 걸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같은 반 여자 아이들이 저를 힐끔거리며 무어라 얘기하고 있었다.

 

 저기, 코가미 군.”

 

 친구들에게 등을 떠밀린 아이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나름 어깨를 펴고 당당한 태도를 보였지만 시선을 피하려 이리저리 피하는 눈과 붉어진 뺨은 어쩔 수 없었다.

 

 생일이 1225일 맞지?”

 .”

 그 날 저녁에 우리 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할 건데 괜찮다면 오지 않을래?”

 ……?”

 ?”

 

 소녀의 눈이 커졌다. 설마 권유를 하고 그런 대답이 돌아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파티 겸, 제 생일을 축하해주려는 건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더듬거리는 소녀를 대신하여 유토가 입을 열었다.

 

 아니, 아니야. 고마워. 하지만 그 날은 부모님과 보내기로 했어.”

 

 미안해.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짓는다.

 물론 거짓말이다. 사실은 본인도 잘 모른다. 그 날 저녁을 누구와 어떻게 보내게 될지. 항상 달랐다. 부모님과 함께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이미 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아무튼 아이의 연기는 썩 괜찮아서 소녀는 섭섭한 표정으로 수긍하고는 축 처진 어깨로 친구들에게 돌아갔다. 아이들은 소녀를 다독여주면서도 잔뜩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다시 창밖을 보려다가 소설을 읽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책을 펼쳤다.

 

 진짜로 부모님과 보낸다고?”

 

 하얀 종이 위로 옅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못 읽을 만큼 어두운 건 아니었으므로 유토는 다음 장으로 넘긴 뒤에 눈을 번듯하게 굴리며 읽어나갔다. 주인공이 큰 위기를 맞이하기 직전인 상황이었다.

 무시함에 익숙한 건지, 아무렇지 않은 건지 말을 걸었던 남자아이는 이젠 바로 옆 자리에 앉아 바짝 붙어왔다. 정말로 부모님하고 보내는 거냐니까? 따위의 물음을 속삭였다. 유토는 답을 알지도 못하고 알더라도 대답해주고 싶지 않았기에 줄곧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유명하신 갱생학자, 아버지는 집행관이라며? 어떻게 같이 크리스마스를 보내?”

 

 더 이상 글을 읽을 수 없었다. 책은 여전히 펼치고 있고 시선도 책에 쏠려있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아이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옆자리의 소년은 계속해서 내뱉었다.

 

 우리 부모님도 무지 바쁘셔. 그래서 이제껏 부모님과 크리스마스를 보내본 적이 없어. 같이 저녁 먹는 것도 한 달에 한 번 할까 말까한데? 아니, 한 달은 너무한가. 아무튼 너희 부모님은 우리 부모님보다 더 바쁘실 텐데 너랑 시간을 보내주신다고? 그거 정말 부럽다. 일을 하시긴 하셔? 사실은 별로 안 바쁜 거 아니야?”

 그건

 알아, 알아. 방금 건 취소할게. 공안국이 매일같이 인력난에 시달리는 건 알아. 얼마나 바쁜지 안다구. 그냥 부러워서 그랬어. 부모님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낸다는 게 사실이라면 말이야.”

 사실이야…….”

 그래? 믿을게.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니까. 근데 그렇게 바쁘신데 너를 잘 챙겨주시는 것도 신기하네. 특별한 날에만 신경써주셔? 그렇다면 가짜 아니야?”

 

 유토는 책을 내려놓았다. 놓쳐버렸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책은 제법 소리를 내며 책상에 부딪쳐 떨어졌다. 우수(憂愁)에 찬 녹색 눈이 제 옆에서 나불거리고 있는 사람에게 닿았다. 장본인은 시선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바쁜데 아이는 있으니 키우기는 해야겠고, 그런 거 아니야? 애초에 갱생학자랑 집행관이 사랑한다니 말이 안 되잖아. , 사실은 두 분이 사랑해서 태어난 게 아닌 거 아냐?”

 

 본인이 궁금한 것은, 생각한 것은 입 밖으로 내버려야만 하는 시대를, 지금 세대는 살고 있다. 사이코패스 색상이 흐려지지 않기 위해, 스트레스를 쌓아두지 않기 위해 하고 싶은 말을 대부분 내뱉어버리는 시대인 것이다. 아마도 유토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이 남자아이도 단순한 호기심에 하는 말이거나 시샘이겠지. 하지만 그런 사회를 고려하며 받아들이기엔 유토는 아직 어린 아이였다.

 지금 느끼는 감정이 설움인지, 당황인지, 분노인지, 그런 감정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대로면 유토의 사이코패스 색상은 점점 흐려질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본인의 감정을 터뜨려야 하지만 유토는 소심한 성격이다. 그렇다고 색상이 흐려지게 놔둘 것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평소라면 혼자 삭혔을 감정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 부모님을 비난해서? 자신의 가정을 의심해서?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본인의 어리석음을 당당하게 발언해서? 이유는 잘 알 수 없었다. 그저 평소보다 감정이 배로 컸을 뿐이다. 유토는 폭발하는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엄청난 소리에 시선이 창가 쪽으로 쏠렸다. 유토는 아랑곳 않고 저를 올려다보는 남자아이의 어깨를 밀쳐 넘어뜨렸다. 아이는 옆으로 고꾸라져 의자에서 떨어졌지만 다치지는 않았다. 유토는 생각했다. 이 다음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일단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이글이글 일렁이는 시선이 진정이 되지 않아 다시 한 번 숨을 들이 마시고, 내쉬었다. 넘어진 아이가 무슨 짓이냐고 버럭 소리를 지르자 유토는 대답했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항상 구석 자리에 앉아 종이책을 읽고 말 수가 적은 소심한 아이가 다른 사람처럼 변해서 차가운 눈으로 낮은 목소리를 내니 아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은 알았는지 교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유토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아이에게 다시 한 번 말했다.

 

 사과해.”

 ?”

 네가 질투하느라 내뱉은 어리석은 말 때문에 나는 화가 났어. 사과해.”

 

 아무리 눈치 없는 아이들이라도, 스트레스에 둔감한 사람이라도 유토의 말에 무슨 상황인지는 깨달았을 것이다. 저기 넘어진 아이가 유토에게 말실수를 했다. 그리고 유토는 그 장본인에게서 사과를 받으려고 한다.

 남자아이는 차갑게 노려보는 눈빛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안해…….”

 

 유토는 순순히 사과하는 아이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눈을 감고 천천히 심호흡했다. 감정이 가라앉고, 주변 시선이 조금씩 느껴졌다. 감정적으로 상대를 밀친 건 잘못한 행동이었지만 아이는 다른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무거운 숨을 내뱉었다.

 

 사과는 했지만 나는 너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앞으로 너랑 대화하고 싶지 않으니까 다시는 말 걸지 마.”

 

 유토는 조곤조곤 말해주고는 의자를 끌어와 자리에 앉았다. 수많은 시선이 제 옆통수를 쿡쿡 찔러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럴 겨를이 없었다. 아이는 자신이 제대로 상황을 해결했는지 되짚어보고 있었다.

  본인이 처한 상황, 느끼는 감정을 자각하고 스트레스를 효율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유토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나오는 화젯거리였다. 이야기의 분위기, 주제, 결론은 모두 달랐지만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거의 비슷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유토는 상황을 해결하려고 했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

 유토가 본인의 행동을 정당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감정을 추스르고서도 얼어붙어있던 아이들은 수업 시작종이 울리고서야 조용히 자리로 돌아갔다.

 

 

 유토는 어렸다. 며칠이 더 지나야 겨우 열 살이 된다. 나쁜 상황을 훌륭하게 해결했어도 사라지지 않는 불안함과 의문은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더니 하교할 시간이 되자 잔뜩 부풀어 있었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유토는 어렸다. 본인이 여태껏 알고 있던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증거가 여럿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음에도 불안했다. 정말로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는 걸까? 억지로 키우시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거야 당사자들에게 물으면 알 수 있겠지만 유토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저 혼자 결론 지으려 했다. 사실은 무서웠다. 그 의문이 사실이어서 부모님이 금방이라도 저를 내치는 건 아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린 유토는 불안함을 회피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다. 제가 알고 있는 순수한 사실을 곧이곧대로 믿으려고 여러 가지 조건을 되뇌었다. 그러면서도 한 구석에서는 떠오르고 마는 것이다. 모든 게 거짓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유토는 걸었다. 모르는 거리로 들어서도, 폐기구획에 들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이는 자신이 걷고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 * * * *

 

 

 

 

 곧 유토 생일인데 뭘 해줘야 할까요?”

 

 아카네가 물었다.

 

 작년에는 책을 줬지?”

 그건 론 씨. 저는 신발이었어요.”

 

 시온이 거들었다. 갑자기 시작 된 유토 생일 선물 정하기에 파일을 읽고 있던 코가미가 고개를 들었다.

 

 그걸 왜 너희가 고민하고 있어?”

 예전부터 그랬는데 이제 와서 뭘 새삼.”

 코가미 씨는 뭘 줄지 정하셨어요?”

 

 말려 봤자 어림도 없고 딱히 말릴 생각도 없었기에 코가미는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시선을 내렸다.

 평화롭게 이야기가 흘러가던 도중,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분석실 문이 열렸다. 기노자였다.

 

 카라노모리, 유토 위치 좀 찾아줘.”

 기노, 무슨 일이야?”

 

 단번에 긴급 상황이라는 걸 깨달은 세 사람은 단번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시온은 고개를 끄덕이고 의자를 밀어 모니터 앞으로 이동했고 코가미와 아카네는 자리에서 일어난 상태였다. 게다가 코가미는 유토의 이름이 나오자 다소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기노자는 다소 곤란한 표정을 짓고는 대답해주었다.

 

 유토의 위치 조회가 안 돼.”

 ?”

 론 씨는 나가셨어.”

 

 방금 전 상황은 이러했다. 론과 기노자는 우연히 같은 복도를 지나게 되었다. 론은 생각보다 이르게 퇴근을 하게 되어 조금 전 하교했을 유토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디바이스를 이용해 유토의 위치를 검색했다. 하지만 조회되지 않았고, 몇 번을 시도해도 결과는 같았다.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는 것을 깨닫자 론은 기노자가 말릴 새 없이 뛰쳐나갔다.

 기노자가 온 뒤로 카라노모리가 좀 더 세부적으로 유토의 위치를 검색했지만 결과는 여전했다.

 

 시온, 마지막 위치는?”

 학교에서 500m 떨어진어라, 아무래도 폐기구획으로 들어간 것 같은데?”

 평소에 다니던 길이 아니죠?”

 

 아카네가 묻자 코가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보다 어린 아이가 혼자 폐기구획에 들어갔다는 건 매우 위험했다. 사족은 접어두고, 코가미는 발걸음을 옮기며 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쪽은 알아서 할 테니 먼저 가.”

 

 기노자가 말했다. 아카네는 짧게 대답하고는 코가미를 따라나섰다.

 수신음이 끊기고 얕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론은 달리고 있었다. 코가미는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어디 있습니까?”

 

 대답은 없었다. 코가미는 빠르게 걸음을 옮기면서 다시 말했다.

 

 학교 근처 폐기구획에

 무서워요, 코가미 씨.”

 

 목소리가 흔들렸다. 바르르 떨리는 입술이 눈앞에 선했다. 그는 아카네와 함께 차에 올라타며 귀를 기울였다.

 

 유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죠?”

 지금 시온이 찾고 있습니다. 저도 지금 감시관과 나가는 중입니다.”

 괜찮을까요? 아홉 살 밖에 안 된 애가 혼자서, 폐기구획에 있는데. 연락도 안 되고 위치도 제대로 모르는데.”

 , 우리가 불안해하면 안 됩니다. 아시잖아요.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합니다.”

 그래도, 그래도…….”

 로니.”

 

 코가미는 차분한 목소리로 분명하게 론을 불렀다. 울음과도 같은 숨소리가 디바이스 너머로 흘러나왔다.

 

 ……저는, 전 공안국 근처예요. 공원으로 가기 전 도로.”

 금방 가겠습니다.”

 

 다행히도 진정된 목소리가 들렸고, 이내 전화가 끊겼다.

 두 사람의 대화를 못 듣지 않았을 아카네가 힐끔, 코가미를 바라보며 넌지시 물었다.

 

 코가미 씨는 괜찮으세요?”

 

 전혀. 괜찮지 않다. 그 역시 무척 불안했다. 하지만 론이 먼저 무너진 상태에서 그마저 망가진다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그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행동하려고 했고, 결과는 좋았다. 코가미는 눈살을 찌푸리고 낮게 한숨을 쉬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다시 숨을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뱉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 * * * *

 

 

 

 

 푸드드득, 날개짓 소리가 들렸다. 그늘졌던 푸른 눈이 반짝, 하고 빛을 띠었다. 까악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렸다. 녹색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가로등 하나 켜지지 않은 새빨간 노을이 드리운 거리에 유토는 서있었다. 멍하니 서서 상황을 파악하던 아이는 천천히 가방끈을 움켜쥐었다. 큰일이다. 머릿속에서 노을보다 빨간 사이렌이 시끄럽게 울려댔다. 서둘러 핸드폰을 꺼냈다. 어느 덧 오후 6시를 나타내는 시각 옆에 통화권 이탈이라는 의미의 아이콘이 있었다. 망연자실한 아이는 밝은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서둘러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만약 이대로 밤을 보내야 한다면 핸드폰은 지켜야 한다.

 이런 이성적인 생각을 마침과 동시에 두려움이 물밀 듯 밀려왔다. 몸이 차게 식었다. 안 그래도 추운 날씨에, 해까지 지고 있으니 많이 추웠다. 따뜻한 옷을 입었지만 이 날씨엔 어쩔 수 없다. 일단 유토는 칼바람을 피하기 위해 느릿느릿 몸을 움직여 큰 건물 벽에 몸을 숨겼다. 옅은 햇빛마저 닿지 않으니 더욱 추위가 느껴졌지만 어두운 곳에 있으니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곤 가만히 부모님이 들려주시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셨더라.

 여기까지 이끈 의문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물어볼지, 모른 척 넘어갈지, 물어봤을 때 부모님의 반응에 따라 어떻게 대응할지 등. 생각할 거리는 많았지만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생각을 하며 걸으면서도 중간부터는 생각이고 뭐고 멍하니 다리가 가는 대로 걸어왔기에 돌아갈 길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이제 열 살인데. 유토는 자신을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느라 이 지경이 되었다. 누구처럼 깊은 한숨을 쉬었다.

 밤이 깊어간다. 해가 졌다. 이제 거리는 완전히 암흑으로 뒤덮였다. 옅은 밝기를 내려주던 검보라색도 금방 사그라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섣불리 움직였다가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하기도 싫고 안 움직이자니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 또 다시 깊고 긴 고민에 빠져들었다. 유토는 언제나 그랬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변함이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자괴감이 들었다. 뿌연 김이 나올 정도로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옷을 두껍게 입긴 했지만 어린 아이가 한겨울 밤을 혼자 밖에서 무사히 보낼 수 있으리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유토는 그렇게 생각했다. 장갑을 끼고 있는 손과 부츠를 신고 있는 발이 시려온 지 오래다. 이대로면 동상에 걸릴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생각할 즈음, 먼 곳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뭐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익숙한 목소리였다. 유토는 귀를 기울였다.

 

 유토! 있으면 대답해!”

 

 어머니, 론이었다. 유토는 잘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움직여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최대한 큰 소리로 외쳤다.

 

 어머니! 저 여기 있어요!”

 

 곧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빠르게 달려오는 발걸음 뒤로 어렴풋이 차 소리도 들렸다.

 오래 지나지 않아 하얀 머리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달려오면서 유토를 발견하고는 눈물을 터뜨렸다. 망가진 도로 한복판에 덩그러니 서있는 아들을 품에 꼭 안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뒤로 차 한 대가 조용히 다가와 섰다. 코가미가 내려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죄송해요.”

 

 코가미는 말없이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작은 목소리로 사과를 내뱉는 유토와 눈이 마주치자 거칠게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호되게 혼날 줄 알았던 아이는 두 사람 모두 화난 기색이 없자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론은 한참 아이를 안고 훌쩍이다가 제 목도리를 풀어 아이의 목에 둘러주었다. 그리고 떨리는, 아까보다 진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다치진 않았어? 위험한 사람은 만나지 않았고? 갑자기 연락도 안 되고 위치 조회도 안 돼서 걱정했잖아. 무슨 일 있었니?”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말에는 애정이 담겨있었다. 이것이 거짓이라 할 수 있을까. 유토는 멍하니 론을 바라보다가 울컥 눈물을 터뜨렸다.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깨닫고 있는 현실을 무엇이 두려워 방황을 하고 멍청한 행동을 해서 두 사람을 얼마나 걱정시켰는지 떠올리고는 죄책감이 든 것이다. 그러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불안했다. 그래서 직접 답을 구하기로 했다. 유토는 울음을 터뜨리며 어눌하게 입을 열었다.

 

 저는 원해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사랑해서 태어난 게 맞죠?”

 

 론의 얼굴이 굳었다. 눈물은 세찬 바람에 이미 말랐다. 아이의 시야는 눈물로 흐려졌지만 눈앞의 어머니의 표정은 보았다. 긴장한 표정으로 눈을 마주쳐왔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유토는 더욱 흐느꼈다. 부모님과 눈을 마주치며 대답을 들을 자신이 없었다. 불안이 사실이 될까봐, 걱정이 현실이 될까봐 무서웠다. 그래서 고개를 숙였다.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부모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바닥으로.

 

 유토.”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유토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듣고 싶지 않다고 소리 치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더 이상 떼를 쓰는 어린이는 아니다. 그렇게 궁금했던 일이고 듣지 않으면 해결되는 건 하나도 없기에 울음소리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어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론은 크게 흐느끼는 아이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 다시 말했다.

 

 유토, 나 좀 봐줄래?”

 

 상냥한 목소리. 여느 때와 같은 다정한 어머니다. 유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뿌연 시야였지만 얼굴은 보였다. 단호하지만 상냥한,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론은 유토와 시선이 마주치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유토를 사랑해. 코가미 씨도 사랑해. 그래서 유토가 태어난 거야. 내가 유토를 원해서, 내가 코가미 씨를 사랑해서.”

 , 아버지도요?”

 

 어리광 부리는 목소리에 론은 생긋 웃으며 코가미를 돌아보았다. 그 역시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론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였다. 유토는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제 앞에 어머니를 꼭 껴안았다. 사랑한다고 말했다. 론도 화답해주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꽉 안았다.

 곧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난 아들은 팔을 벌리고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코가미가 번쩍, 유토를 안아주었다. 아이는 어머니에게 했던 것처럼 아버지를 꼭 껴안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코가미도 아이를 토닥이며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아이의 흐느낌이 어느 정도 멎자 코가미가 물었다.

 

 그런 고민을 하느라 여기까지 걸어온 거야? 혼자서?”

 그럴 생각은 아니었어요……. 죄송해요…….”

 잘못을 알고 있으니 더 이상 말은 안 하겠지만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돼.”

 

 가더라도 같이 가야지. 유토는 이어지는 말에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론은 채 닦지 못한 눈물을 손으로 대충 닦아내고는 코가미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앞을 가리켰다. 아카네가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세 사람은 해가 진 방향을 등지고 앞으로 걸어갔다. 이제 세 사람의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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