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 스위트룸
카테고리
작성일
2022. 9. 25. 17:35
작성자
순묵애빛

자작 캐릭터와 원작 캐릭터가 엮이는 드림물

※ 버질 x 자캐 HL

※ 자캐는 DMC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원작 설정을 따르나 천사와 악마, 마계와 선계(천계)에 관한 원작 개변 설정, 자작 설정 포함

 

▶ 리부트 설정을 조금 포함

▶ 대부분 DMC 5 이후를 다루며 DMC 5 결말 스포일러 주의

▶ 썰이라 퇴고 X. 문체가 중구난방, 비문 남발, 오탈자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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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보

 

 

 리부트에 나온 림보 관련한 썰.
 
 
 한적한 데빌 메이 크라이. 책상에 다리 올리고 앉아서 하품이나 해대던 단테는 익숙한 기척이 다가오자 눈썹을 샐쭉였다. 이녀석이 여길 왜 와? 이따금씩 오긴 했으나 그는 제 짝과 함께 얼마 전 다녀갔었다. 보름도 채 안 되어 다시 올 일이 있나. 그가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문이 큰 소릴 내며 열렸다. 단테는 버질에게서 다급한 기색을 읽었다. 겉으로는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거친 호흡과 한껏 좁아진 미간, 내부를 빠르게 훑는 시선이 눈에 띄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야?"
 헤레이스는 어디 있고. 이어질 그의 물음은 동문서답한 버질에 의해 해결되었다.
 "헤레이스가 여기 오지 않았나?"
 "아니? 왜?"
 단테가 하려던 질문을 그대로 뱉는 버질. 머릿속에 커다란 물음표가 떠오른 단테는 어리둥절한 제 반응에 여지껏 보여준 적 없던 표정을 짓는 쌍둥이 형을 보고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감을 인지했다.
 "갈 만한 곳은 다 찾아 봤어?"
 "사흘 간 함께 다녔던 곳은 다 돌았다. 여기가 마지막이었지."
 지친 기색의 버질은 마른 세수를 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의식적으로 숨을 고르지 않으면 호흡까지 잊을 것처럼 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아침부터 헤레이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버질 곁을 쉬이 떠나지 않는 그는 직접 말을 건네거나 쪽지를 남기는 등, 자신의 목적을 밝혔다. 그런데 오늘 아침 버질이 헤레이스를 반나절 찾아헤맸음에도 그의 손끝 하나 보이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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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테와 버질이 심각하게 대화 하다가 걱정된 단테가 괜스레 버질에게 쏘아붙이고, 안 그래도 예민한데 툭 건드는 단테한테 화난 버질. 둘이 말싸움 시작하려니까 갑자기 들리는 헤레이스의 목소리. 둘이 어리둥절해서 잘못 들었나 싶은데 어딘가 메아리 같은 헤레이스 목소리가 계속 들리지. "들리시나요? 저 여기 있어요!" 잘 둘러보니 뭔가 투명한 헤레이스가 서 있고. 귀신인가 싶은 두 사람.
 알 수 없는 사태에 여기저기 연락 넣는 단테와 헤레이스 걱정만 가득인 버질. 감정이 격해지진 않았지만 잘게 떨리는 시선이나 손끝에서 얼마나 불안했는지 알 수 있고. 헤레이스는 본인도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모르겠다며, 자고 일어났더니 거리에 아무도 없어서 본인도 버질을 찾아 다녔다고. 마지막으로 데빌 메이 크라이에 왔는데 반투명한 두 사람이 보였다고. 버질과 헤레이스는 똑같이 동행 흔적을 거꾸로 되짚었는데 헤레이스가 림보에 갇혀서 만나지 못했던 것.
 단테의 연락을 받은 트리시가 림보 아니냐고 묻고. 림보는 평행 세계와는 다르게 현실 바로 아래 똑같이 존재하는 거울 세계. 인간 외 생물이 거주하는 현실과 달리 림보는 악마의 은신처 같은 곳. 굳이 나누자면 천국 아래 현실, 현실 아래 림보, 그 아래 지옥이 있다 치고. 림보는 현실 아래 그늘진 곳. 악마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무법지대와 다름 없다. 현실에 악마가 나타나듯이 림보에도 인간이 드나들 수는 있지만 경계가 흐릿했던 몇 세기 이후로는 림보에 관한 정보 마저 흐려질 정도로 언급이 없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빠져드는 경우가 있나.
 조사해보니 실종된 사람은 없어서 다행..인데 헤레이스를 어쩌지. 경계가 무너져 헤레이스가 림보에 빠진 건 유리즌 탓이라서 면목이 없는 버질. 이게 다 업보. 헤레이스를 제 손으로 죽일 뻔 한 것도 모자라서 제 과오로 소중한 연인 마저 위험에 빠뜨리게 된. 마른 세수하는 버질.
 여차저차 방법 찾아 보겠다고 협력하는 레이디와 트리시. 경계가 흐릿한 곳에서는 이처럼 서로 대화할 수도 있고 육안으로 볼 수도 있다니까.. 데메크에만 있는데 경계가 흐려지겠지. 무작위로 바뀌는 위치.
 버질이 헤레이스를 잡으려고 하지만 서로 잡을 수가 없고. 무섭고 불안한데 의지할 수 없는 헤레이스는 벌벌 떨고. 그런 헤레이스를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버질은 주먹만 쥐고.
 그런데 야마토는 툭 건드려져서, 경계가 완전히 닫힌 곳 아니라면 헤레이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더라도 야마토를 잡아서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서로의 존재를 공유할 수 있으니까. 잡으라는 듯이 야마토를 수평으로 드는 버질.
 림보는 악마의 무법지대. 이따금씩 악마에게 쫓기면 헤레이스의 행적을 따라 쫓아가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버질. 자신도 차라리 림보에 들어가고 싶은데 들어갈 방법을 모르고. 이동할 때마다 경계가 흐려지고 닫혀서 깜빡깜빡 모습이 보였다가 말았다가 하는 헤레이스 때문에 속만 타들어가는 버질. 곧 미쳐버릴 것 같다.

 

뒤는,, 나중에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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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편린

 

 

 그냥 버질이랑 단테가 현재 벌어진 사건에서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트라우마를 치료 받는..? 그런 게 보고 싶다.
 5 지나고 버질헤리 떠돌아다니면서 가끔씩 단테 보러 오고(주로 헤리가 만나러 가자고 함).. 그러는데 갑자기 악마의 습격 어쩌구.
 키리에가 봉사활동할 때 딸려오듯(?) 함께 있는 네로. 키리에가 함께 하지 않겠냐고 권유해서 날짜 시간 맞춰서 찾아온 헤레이스. 봉사고 뭐고 그냥 헤레이스 따라온 버질과 애들 볼 겸 헤레이스가 권유해줬으니 따라갈 겸 겸사겸사 따라온 단테. 봉사라고 대단한 건 아니고 성당에서 애들 밥 챙겨주거나 놀아주거나 건물 보수해주거나 뭐 그런 거라 악마/인간 파티 5인 말고도 사람 좀 있었을 듯. 키리에랑 같은 봉사활동 하는 사람들.
 거기서 흑발 쌍둥이 만남. 꼬맹이들. 둘 보고 왠지 단테와 버질 생각나서 더 예뻐하는 헤레이스.
 그러고 악마 습격 어쩌구.
 단테는 맨날 그랬던 것처럼 무기 들고 박차고 나가서 악마들 쓸어버리려고 함. 그런데 똑같이 나갔어야 할 버질이 헤레이스 옆에 있는 거지.
 헤레이스는 나서서 뭔가를 할 수 없음. 신력이 있다 해도 그건 본인만 겨우 방어할 수 있는 미약한 힘에 불과하니.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구호하는 데만 집중 하는데 버질은 함께 사람들을 도우면서 헤레이스에게 닿는 위험을 쳐냄. 그 장면을 보고 버질이 많이 달라졌구나 싶은 단테.
 이와 같이 버질의 의외성 짙은 행동은 헤레이스 때문이긴 함. 누군가 헤레이스를 맡아주거나 이쪽의 위험이 현저히 줄어들면 예전처럼 박차고 나가서 쓸어버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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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헤레이스와 갈라졌다든가? 처음에 사건 터졌을 때 붙어있지 않아서 마음 급해진 버질과 덩달아 헤레이스 걱정돼서 함께 쓸어버리는 단테.
 어느 정도 정리하고 다급히 헤레이스의 신력을 쫓아갔는데 다 부서져가는 옷장에서 쌍둥이 동생만 발견. 헤레이스가 지켜줬다고. 형을 찾으러 갔다고. 이 사태에 버튼 눌린 건 단테였을 거고. 간접적으로 옛날 일 떠올린 건 버질이겠지.
 다시 헤레이스 찾으러 갔는데 쌍둥이 형 지키려고 몸 던지는 헤레이스와 극적으로 그 사이에 끼어드는 형제.
 헤레이스가 위험에 뛰어드는 걸 싫어하는 버질은 당장이라도 그에게 왜 그랬느냐 윽박지르고 싶지만 헤레이스의 희생적인 성향을 알기에, 어린 아이를 앞에 두고 왜 살렸는지 묻는 것도 우스워서 미간만 찌푸린 채 가만히 있고. 그의 심정을 대강 아는 헤레이스는 쓰게 웃으며 버질이 생각나서 몸이 저절로 나갔다고 알아서 답하겠지.
 희생을 강요당했던 헤레이스는 헌신과 희생을 싫어한다. 그러나 그게 버질에 관련된 거라면 한치의 고민도 없이 이행하지. 그의 행동 원리를 잘 아는 버질은 말문이 막혔을까.
 와중에 헤레이스의 모습과 그 품에 안겨 목숨을 건진 인간 소년에게서 버질과 에바를 떠올리는 단테. 잠시 눈을 감은 채 상념에 빠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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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

 

 

 데메크에서 천사에 대한 언급을.. 리부트에서만 봤던 것 같다. 근데 악마보다 설정 언급이 없음. 그런고로 뇌피셜로 이뤄진 무언가.
 
 
 악마의 잦은 현계 개입으로 천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함. 원래 그들은 선계에서 현계고 마계고 특별한 개입 없이 지들끼리 지지고 볶고 살았는데 마계가 현계에서 자주 쑥대밭을 만들고 힘을 키워 나가니까 경계 한답시고 내려온 거지.
 근데 천사가 나타났다는 게 그리 좋은 징조는 아님. 천사와 악마의 전쟁이 벌어지면 꼭 현계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들은 꼭 중간 지점인 현계에서만 싸워댔음. 그걸 알려준 트리시와 경계하는 사람들.
 천사는 본래 생물의 혼을 관리하고 세상을 관장하는 신의 하수인 전령 어쩌구. 그래서 인간의 형상을 했거나 비슷한 개체가 대부분인데 인간과 달리 감정이 없지. 사무적이고 투박하며 냉정한.
 그런 천사들이 현계를 돌아보다가 신력을 타고 난 헤레이스를 발견하고. 천사가 되어 악마와 싸울지 어쩌구 했는데 헤레이스는 천사에게서 거부감을 느낀다.
 신의 "존재" 자체는 믿으나 그를 '신뢰'하느냐 물으면 고개를 젓는 헤레이스. 헤레이스가 어떤 시절을 보냈는지 알 텐데도 뻔뻔하게 하는 권유함. 과거에 그런 일을 겪는 신력을 타고 난 자가 있단 걸 알면서도 구호의 손길 한 번 뻗어주지 않았으면서. 구원을 기반으로 하는 신이라면, 헤레이스에겐 버질이다.
 헤레이스는 감정이 없고 악마를 그저 대치할 대상으로만 보는 천사가 싫다. 자신이 혹여나 천사가 되었다간 버질에게 가진 감정을 싸그리 잃고 그와 적대 해야 하니까 좋을 리가 없지.
 그런데 천사는 고지식해서 신력을 가진 인간이 악마의 편에 서는 게 틀리다 하여 자꾸만 강요하지. 그런 천사와 대립하면서 처음으로 타인에게 화를 내며 거부 의사를 표현한 헤레이스. 그 정도로 선계와 신이 싫었다.
 천사면 무조건 악마와 싸워야 하고 악마면 무조건 천사와 싸워야 하나. 각각 악마와 인간, 천사와 인간의 피가 섞인 반인반신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들이 보기에 감정 없는 천사들은 굉장히 이기적이었고 하는 행동이 좀 다를 뿐 결과적으로 악마와 얽히면 악마와 행하는 잔혹한 짓들과 결과가 그리 다르지 않으니. 싸우고 지지고 볶으려면 지들끼리 하라지. 인간은 얽히고 싶지 않다.
 순리니 뭐니 그런 건 당신들 사정이고 인간이 알 바 아니다. 당신들이 말한 대로 인간은 선계고 마계고 그 어떤 지배도 받지 않는 확실한 중간 지대이니. 귀찮아서 내버려둔 주제에 이제 와서 마계가 힘을 얻는 게 두려워 개입하려는 작태가 역겹고 치졸하다. 천사와 대화할수록 그들에서 부정적인 감정만 쌓는 헤레이스.
 선계에서 그런 헤레이스에 대한 처벌을 논의하자... 얼척없는 데메크 일당. 헤레이스가 신력 때문에 선계와 관련이 있는 건 맞지만 저런 곳에서 처우를 논의할 근거는 없다. 본인들 입으로 현계는 어느 곳의 지배도 받지 않는다 언급해놓고는 신력이 좀 있다 하여 바로 선계와 엮어버리는 고지식한 사고에 속만 뒤집어지는 헤레이스. 내내 분노하고 짜증내는 헤레이스와 화는 나지만 헤레이스가 본 적 없을 만큼 분노를 표해서 되려 차분해진 버질. 총체적인 이 혼란한 상황이 웃긴 단테.
 급기야 헤레이스의 아비라는 천사가 나타나는데 헤레이스는 그 짝의 뺨을 갈겨버리고. 무슨 낯으로 얼굴을 비추느냐, 한 인간의 삶을 망쳐버린 주제에 무슨 명분으로 회유하려 드느냐 일갈하고. 당신네들 전쟁에 인간은 관여하지 않을 것이니 우주 밖이든 선계든 마계든 지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라는 헤레이스. 그것이 인간의 입장이냐 묻는 천사에게 모든 인간이 상관 없는 전쟁에 새우등 터지고 싶지 않을 테니 더 이상 현계에 폐 끼치지 말고 꺼지라 한다.
 헤레이스의 감정적인 모습을 여럿 보는 버질은 신기한 기분이지 않을까. 헤레이스의 표현이 확실해진 건 좋지만 너무 격해져서 옆에서 말리는 건 버질이고. 이게 또 웃긴 단테 웃다가 트리시나 레이디에게 옆구리 찔림.
 
 
 
 이런 건 어떨까.
 천사들이 자꾸만 헤레이스에게 찾아가니까 악마들이 그가 선계의 중요 인물인 줄 착각하는 거지. 그래서 납치함. 천사들이 고집 꺾고 그들에게 관여하지 않고 현계에 피해 안 가겠다 약조한 뒤였음. 천사가 물러나니까 이젠 악마들이 난리인 상황. 눈 돌아가는 건 버질. 다른 데빌 헌터들도 어이없음. 선계 물리니까 이젠 마계가 지랄이라니.
 각설하고 헤레이스 찾음. 근데 악마들이 기다린 천사가 아니라 데빌 헌터+a니 어리둥절행. 그러다 인간들이 선계 편에 섰다고 착각하여 천사들의 지원군인 줄 알고.. 헤레이스는 악마들의 회유와 세뇌를 신력을 사용하며 버텨내고 그러면서 더욱 신력이 강해져서 날개까지 자라게 됨.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정신 잃은 헤레이스 보고 눈 돌아간 버질. 당장이라도 튀어 나가려는 그를 붙든 건 헤레이스의 머리채를 잡은 (임시)악마 우두머리.
 그때 정신 차린 헤레이스가 본인이 인질로 잡혀서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하는 걸 눈치채고 품에서 은장도를 꺼냄. (예전에 니코가 호신용이라고 신력을 담아 쓰라고 장난 반 진심 반 담아 만들어준 날이 뭉툭한 검.) 그걸로 악마 손 뚫을 기세로 위로 찔렀는데 잡힌 머리가 잘리면서 아래로 뚝 떨어지고 악마가 당황하지만... 그런 둔한 움직임으로 악마 손에서 벗어날 수 없지. 이번엔 헤레이스의 목을 낚아채 잡는데 악마가 뭐라 말하며 헤레이스의 기지를 비웃는 동안 그 틈을 타서 달려드는 데빌 헌터들.
 어쩌구 악마 해치우고 헤레이스 되찾은 버질. 항상 헤레이스 때문에 심장이 남아나질 않을 듯하다. 그리고 그게 헤레이스를 이런 세상에 말려들게 한 본인의 책임과 그지 같은 세상 탓이라 생각하고 마음 복잡하겠지. 헤레이스는 또 버질 마음이 안 좋아 보이니까 본인 탓인 줄 알고 떠듬떠듬 구구절절 이런저런 말이나 하고. 헤레이스의 상태가 좋지 못하니 말 하지 않아도 된다고 소중히 안아들고 돌아감. 버질 품에 안기는 게 익숙해서 조금 창피할 수 있는 이 상황에 덤덤한 헤레이스와.. 당연한 버질. 훌륭한 커퀴.
 반 싹둑 잘린 헤레이스 머리 다듬어주는 트리시. 깔끔한 단발이 되는데 그게 또 잘 어울리면서 엄청 어려보이겠지. 단테가 그거 갖고 버질 보면서 오, 슈가 대디. 이래서 버질이랑 칼부림 날 것 같음. 사실 버질도 속으로 나이차가 심해 보인다고 생각했을 듯. ㅋㅋㅋ
 
 
 갑자기? 천사 날개를 쓰는 헤레이스가 보고 싶고? 버질이 떨어질 때 본인도 같이 떨어져서 날개 펼치는. 그냥 생각 없이 버질 구하겠다고 뛰어들었다가 본인도 모르게 날개가 돋아서 어찌저찌 떨어지는 속도는 늦췄는데 헤레이스에겐 그 무게를 지탱할 근력이 없어서.. 천천히 떨어져 다치지는 않겠지만. 뭐.
 쨌든 직전에서 천사의 재림을 목격한 버질은 멍하니 스쳐간 찰나에 묶이겠지. 새하얀 빛과 함께 돋아나는 날개와 충격으로 휘날리던 옅은 머리카락, 순간적으로 빛났던 녹색 눈동자... 그 때 만큼은 버질에게 헤레이스는 어떤 신보다 신성한 존재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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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네로와 키리에의 결혼식에 초대된 버질헤리. 버질이 네로의 아버지로서...는 초대됐는데 그들이 앉을 자리는 데메크 일동과 같은 줄이겠지. 키리에도 친족이 없으니까 네로가 키리에를 배려해서 친족을 언급하는 회는 삭제했을 듯.
 어쨌든 감회가 새로운 사람들. 제일 어리숙하고 어린 놈이 결혼이라니. 그리고 누구보다 인간적으로 살고 있다. 반 걸쳐 있지만 그들 중에서는 인간에 어울리는 삶을 살고 진하게 녹아있음.
 키리에와 네로의 결혼식은 소박하게 진행됐겠지. 소수의 하객만 불러다가 키리에가 다니는 성당의 신부님께 주례를 요청하고 맹세와 서약을 하는. 성악단의 노래를 들으며 축복을 받고.
 키리에가 부케 던지겠다고 헤레이스 부른다. 헤레이스가 어리둥절하지만 일단 던져주니까 받고. 행복하게 웃는 네로, 키리에와 그들의 행복이 본인의 것인 마냥 똑같이 따뜻하게 웃어주는 헤레이스. 그리고 그런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버질.
 두 사람이 신혼여행 간다고 떠나버리고 결혼식이 끝나자 짧은 인사 뒤 헤어지는 사람들. 헤레이스는 극히 인간적이고 축복만 가득했던 시간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하고 키리에에게 받은 부케만 바라보겠지.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하다가 데메크에 화병에 꽂아 놔야겠다고 하려나. 조화라서 물은 필요 없지만 기분이라도 내고자..
 버질은 헤레이스도 그런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하는 거 아닐까 고민한다. 수수한 미사복이 아닌 화려한 웨딩 드레스를 입고 베일을 쓴 동반자. 반투명한 베일을 걷어 올리면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맞춰 오는 순백의 헤레이스. 여기까지 상상하자 심장이 옥죄이는 듯한 묘한 기분을 느끼는 버질.
 그러고 다시금 깨닫는 거지. 본인이 얼마나 헤레이스를 사랑하는지. 헤레이스가 드레스를 입고 카펫을 따라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걸 보고 싶은 건 다름 아닌 자신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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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입히기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한적한 데빌 메이 크라이에서, 간만에 모여 수다를 떠는 트리시, 레이디, 헤레이스. 저 옆에서는 짧은 근황만 주고 받고 자기들 일에 빠진(버질은 책 읽고 단테는 피자 먹거나 일거리 들춰보거나 신문 보거나.) 쌍둥이.
 세 여성들은 각자 가져온 마실거리 홀짝이면서 수다를 떨지. 그러다 언제 같이 옷 사러 가자는 트리시. 레이디와는 몇 번 가봤지만 헤레이스와는 가본 적이 없다면서. 헤레이스에게 잘 어울리는 옷도 많을 거고... 시간이 낮이라서 떠오른 김에 당장 가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트리시와 그에게 동조하며 일어나는 레이디. 헤레이스가 어버버하는 동안 버질에게 허락을 받고. 버질은... 저들을 사적인 의미로 신뢰하고 헤레이스가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니까 허락해주겠지. 그동안 단테랑 한 장소에 오래도록 있겠지만 그들은 오고 가는 대화가 없더라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니.. 어쩌구. 그렇게 파티가 결성됨.
 밤 다 돼서 버질이 헤레이스를 찾으러 가야 하나 고민할 즈음 돌아온 세 사람. 헤레이스는 항상 입는 길고 단정한 복장이 아니라 팔다리가 훤히 드러나는 짧고 꽉 조이는 옷을 입고 나타남. 거기다 트리시와 레이디 양손에는 종이가방이 가득 들려있지. 두 사람 사이에 낑겨서 얼굴 붉어진 헤레이스. 이렇게 신체가 노출되는 옷을 입는 건 처음이라 낯설어 함.
 트리시와 레이디는 헤레이스가 노출을 어려워 해서 팔다리 만으로 한계였다고, 나중에 버질이 취향껏 이거저거 입혀달라면서 그들의 종이가방 반을 쥐어줌. 단테는 휘파람 불면서 그러고 보니 버질 취향도 궁금하다고 짓굳은 소리나 하다가 버질 눈총 받음.
 어쨌든 그들의 거처로(항상 바뀌는 호텔) 돌아가는 두 사람.
 헤레이스는 버질이 처음 돌아왔을 때 말고는 눈길도 안 줘서 맘에 안 드나 싶어 괜히 쭈뼛거리며 그의 뒤를 따르지. 버질은 트리시와 레이디가 강제로 쥐어준 종이가방 양손에 들고 앞서가다가 길거리 남자들 시선이 제 뒤로 꽂히는 걸 보고 잠깐 멈춰 선다. 그 시선 끝에는 분명 제 동반자가 있을 텐데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아서 괜히 인간들 째려보며 화풀이 하는.
 쫄은 남자들이 급히 시선을 돌리고서야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헤레이스가 용기내어 이런 옷 역시 어울리지 않느냐 묻고. 뒤도 안 돌아보고 앞서 걷다가 새로운 옷을 입는 건 좋지만 다른 이들의 시선이 헤레이스에게 닿는 게 싫다고 솔직하게 답하는 버질.
 버질의 답변을 곰곰이 생각하다 얼굴 더 빨개지는 헤레이스. 와중에 버질은 양손에 들었던 종이 가방 한손으로 다 잡고 남은 손으로는 헤레이스 손 잡아줄 듯.
 행복한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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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화

 

 

 인간 형상이더라도 악마의 힘을 가졌으니 민감한 헤레이스가 느끼지 못할 리 없다. 그러니 처음 만났을 때도 버질이 악마와 관련된 사람임을 눈치챘고.
 더군다나 악마의 곁에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본인을 보호 하기 위해 신력이 절로 강해지는 헤레이스. 헤레이스가 천사의 힘을 달가워 하지 않고 본인도 헤레이스가 평범한 인간에 머무는 걸 지향하니 헤레이스 곁에서는 되도록 마인화 하지 않는 버질.
 그러나 헤레이스는 마인화 한 버질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위해 감추려 하는 그에게 더한 애정을 느꼈다면 모를까. 헤레이스는 버질의 모든 부분을 사랑하니까, 그의 무시무시한 악마 형상에 익숙해지기 위해... 버질에게 마인화를 부탁하는 헤레이스.
 버질은 몇 번 거부했지만 이런 부분에선 완강한 헤레이스를 꺾을 수 없어서... 두세 걸음 떨어져서 마인화 해주는 버질. 마인화가 내부에 가두고 있던 힘을 해방하는 거라서 충격이 없을 수 없으니까, 그 탓에 헤레이스가 다치면 안 되니까. 헤레이스는 버질 말대로 얌전히 떨어진 채 기다리고 있었겠지.
 그렇게 마인화 한 버질에게 조심조심 다가가는 헤레이스. 버질은 그걸 보고 호기심을 느낀 길고양이가 조심조심 인간에게 다가오는 것 같지 않았을까. 실제로 헤레이스는 가까이 가지 말라고 경보를 울려대는 본능을 무시하고 심장을 진정 시키는 중이라 매우 긴장한 상태. 헤레이스가 준비될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면서 동상처럼 서 있는 버질.
 본인이 먼저 손 댔으면서 화들짝 놀랐다가 다시 살그머니 손 대는 헤레이스. 투박하지만 광택이 있고, 복잡하고 정교한 악마의 몸. 인간과 비슷하지만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구조. 겨우 본능을 억누른 헤레이스는 마인 버질 앞에 멀쩡히 서 있게 되고.
 그제야 차근차근 살펴보기 시작한다. 잘못 건드리면 깨질 유리공예를 만지는 것 마냥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팔을 들어 팔꿈치, 손목부터 이어지는 뿔과 같은 뼈대, 거대하지만 세밀하게 조각된 예술품 같은 손. 장난감을 만지듯 펼쳐진 손을 조심히 눌러 주먹을 쥐어보고. 저항없이 헤레이스의 의지대로 접히는 손가락.
 어둑한 배경에 유독 빛나는 은은한 빛. 헤레이스는 버질이 발산하는 푸른 빛에 시선을 빼앗겼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마주치는 두 사람의 시선. 헤레이스는 천적을 만난 초식동물처럼 움찔거렸다가 두손으로 잡았던 단단한 손을 꼭 잡고 가까스로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대신 저도 모르게 피했던 시선을 되돌려 파란 유리 같은 눈동자를 마주하지.
 헤레이스는 서늘한 푸른 빛에서 안온한 애정을 읽었다. 겉모습이 달라지고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더욱 위협적이었지만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버질임은 틀림이 없기에. 헤레이스는 평소보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헤레이스는 버질을 잡았던 손을 놓고 두 팔을 벌렸다. 그리고 느린 움직임으로 거리를 좁혀 밀착해 그의 몸체를 끌어안았다. 싫다면, 한 걸음만 물러나 피할 수 있을 만큼 천천히 움직였으나 버질은 헤레이스의 포옹을 피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헤레이스가 그에게 먼저 안겨온 건 처음이었으니.
 인간의 연한 살이 품기엔 너무도 투박하고 딱딱한 신체였다. 그래도 헤레이스는 팔에 힘을 주어 꼭 껴안았다. 딱딱한 신체 내부에서 심장소리가 들릴까 싶어 틈 없이 바짝 밀착해 그에게 무게를 실었다.
 온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몸을 가졌고 내뿜는 기운은 심약자라면 금방 혼절할 만큼 압도적이다. 존재감이 거대한 그에게선 위험 밖에 느껴지지 않지만 이러한 모습도 버질이었다. 헤레이스의 구원임은 변하지 않는다.
 깨달음에 비례해 커지는 애정 탓에 팔에 힘이 들어 갔다. 연약한 팔이 딱딱한 비늘에 짓눌려 창백해질 즈음, 버질은 마인화를 풀었다. 그리고 허공을 배회하던 팔로 헤레이스의 등을 감쌌다.
 "왜 마인화를 풀었어요?"
 "안아줄 수 없으니까."
 "그대로 안아줘도 되는데."
 바보같은 말이지만, 마인화 한 상태로 헤레이스를 안았다간 두부처럼 뭉개질 것 같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마인화를 풀었는데 어쩐지 헤레이스는 아쉬운 티를 내었다.
 헤레이스가 본인의 어떤 모습이든 포용할 줄 알았던 이성과 혹시나 하여 불안했던 본능이 타협하는 순간에 버질 또한 편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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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버질이 문득 눈을 떴을 때는 공기가 탁하고 답답한 감각이 들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딱 맞는 공간에 비스듬히 누워 다리만 조금 굽히고 있었는데 그 몸 위에는 누군가 올라타 있지.
 그게 헤레이스. 버질은 입에 재갈을 문 채 손목이 묶여 헤레이스의 등허리에 얹힌 상태였고, 헤레이스는 눈이 가려진 채 버질 등 뒤로 손이 묶인 상태. 그야말로 1mm 틈도 없이 밀착한 채 각자 결박된..
 마인화 해서 빠져나갈 수 있지만 밀착한 헤레이스에게 어떤 충격이 갈 지 몰라서 그 방법은 곧장 머리에서 지웠을 듯. 와중에 헤레이스는 정신을 잃은 건지 잠든 건지 고른 숨소리만 뱉고 미동이 없어. 일단 헤레이스가 깰 때까지 기다릴까 싶은 버질. 재갈이 물려 말도 못 하고 손이 묶여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렸는지 웅얼거리며 작게 바르작대는 헤레이스. 잠시 멍하니 있다가 상황을 깨닫고 당황한 듯 파드득 떨었다. 아무래도 눈도 가려지고 손도 속박된 채 누군가와 좁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공포로 다가왔는지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 이러다 과호흡으로 숨이 넘어갈 것 같아서 버질은 재갈을 문 채로 말을 뱉었다.
 당연히 목소리는 온전한 말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막혀 나온 목소리에서 익숙함을 느낀 헤레이스의 발작은 멈췄다.
 "...버질?"
 버질은 간단한 대답 밖에 못 하겠지. 헤레이스는 버질이 제 손으로 등 툭툭 치는 걸 느끼곤 버질도 자유롭지 못한 상태임을 알게 되고. 거기에 제대로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입이 막힌 줄 알지.
 
 
 
 아니야 너무 길다 이게 아니다. 보고 싶은 건 이게 아닌데.
 작은 공간에 갇힌 두 사람. 어떤 상황으로 갇혀 있는지... 둘의 반응은 어떤지...
 
 음, 헤레이스가 등 대고 누워 있고, 그 위에 버질이 올라탄 모양새. 올라 탔다기 보다는.. 헤레이스가 허벅지로 버질의 허리를 감싸고 버질이 무릎 꿇은 채 헤레이스 머리 맡에 두 손으로 짚고 본인 무게를 지탱하는.
 근데 아무래도 버질 자세가 불편할 수밖에 없으니까, 헤레이스가 괜찮으니 무게 실으라 하겠지. 버질이 부담을 줄 수 없다고 하니까 그냥 팔 뻗어서 목 둘러 안고 끌어안는 헤레이스.
 자세가 ...그런 자세라서 민망하긴 한데 .. 다른 사람이 도와주러 오거나 이 상황이 해결될 때까지는 어쩔 수가 없지. 버질도 한층 편할 테고, 이대로 붙어 있는 게... 헤레이스는 포옹을 좋아하니까 이게 최선이라 생각할 듯.
 버질은 좁은 공간에 가득 찬 헤레이스의 체향과 안온한 아우라, 말랑한 육체, 따스한 온기까지. 약간 어질하지 않을까. 스킨십을 한두 번 한 것도 아니고 밀착해 있는 게 처음도 아닌데 남에 의해 이런 상황이 강제된 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이런 상황에 흥분하는 자신을 느끼곤 자괴감 들 듯.

 

 

 

 

여기부턴.... 집 있는 버질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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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1

  화창한 날씨. 버질은 일 있어서 나갔고 헤레이스는 평화롭게 집에서 시간 보내다가 정오에 해 쾌청한 거 보고 이불 빨래나 할까, 싶었지.
 당장 침실 가서 이불, 시트 걷어서 세탁기에 넣고 베개 커버 새걸로 바꾸고... 세탁기 다 돌아갈 때까지 집 창문이란 창문 다 열어놓고 대청소 돌입하는 헤레이스.
 먼지 하나 없게 빤딱빤딱 청소하고... 건조기 다 돌아가면 바깥에 널어서 안 마른 부분 말리고. 해 떨어질 즈음 싹 걷어서 침실 정리하는. 그렇게 향긋하고 포곤하고 뽀송한 침대 완성.
 폭 파고 들면 기분 좋아서 거기서 한참 뒹굴거리다가 청소하느라 지쳤는지 순식간에 잠들어 버리는 헤레이스. 조금만 눈 붙였다가 저녁 준비해야지~ 했는데 세상 모르게 자버리고.
 집으로 돌아온 버질이 조용한 집안 둘러보다가 침대에 그러고 엎어진 헤레이스 보고 웃지 않을까. 이미 먼지 하나 없이 쾌적한 집안 보고 날씨가 좋았으니 헤레이스가 대청소를 했을 거라고 짐작하고... 이불 빨래 한 뒤 잠깐 누웠다가 피곤해서 잠들어버린 것까지 알아차림.
 옆으로 고개 돌리고 이불에 푹 파묻혀서 곤히 잠든 헤레이스 얼굴 구경하는 버질. 씻고 나왔는데도 그러고 자고 있어서 오늘 열심히 청소 했구나 싶을 듯. 하긴 사람 손 닿은 집이 새 집 마냥 번쩍거리니 그럴 만두.
 오늘 저녁은 본인이 준비해야겠다 싶어서 팔 걷어 붙이고.. 가끔 헤레이스랑 같이 요리할 때 걸치는 하늘색 앞치마(깜찍함) 두른 후 간단한 식사 준비하는.
 긴 낮잠 자고서 맛있는 냄새에 깬 헤리. 주변에 어둑한 거 보고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났지, 하다가 맛있는 냄새와... 지금 시간이면 버질이 돌아왔을 텐데? 퍼뜩 놀라서 우다다다 주방으로 내려가는. 거기서 막 테이블 세팅하고 있는 버질이랑 눈 마주치고.
 잠 덜 깬 눈에 당혹스런 표정, 산발이 된 머리...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입만 벙긋거리는 모습이 귀여워서 낮게 웃는 버질. 그래서 먼저 잘 잤느냐 묻겠지. 헤레이스는 그제야 제 상태를 떠올리곤 후다닥 손으로 머리 빗어대면서 다녀오셨냐 묻지.
 "청소를 깨끗하게 해놨더군."
 "날씨가 너무 좋아서... 이불 빨래만 하려다가 다 해버렸어요."
 수줍게 웃는 헤레이스. 버질이 의자 끌어서 앉으라고 해주면 바로 엉덩이 붙이고. 버질은 의자 살짝 밀어준 뒤 맞은 편에 앉고. 그렇게 시작 되는 행복하고 단란한 두 사람의 저녁식사.

 

 

 

2

 집순이 헤레이스가 드물게 집 밖에 나가는 때가 있는데, 바로 책 사러 가는 날. 도서관에서 빌릴 때도 있고 독립 서점에서 살 때도 있다.

 큰 서점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은 안 감 : 1) 사람이 많은 장소에는 악마나 천사, 혹은 그와 관련된 사람이 있을 수 있고. 2) 헤레이스의 신력에 이끌린 마족 탓에 사달이 나면 큰 인명 피해로 번질 수 있으니.

 아무튼... 정오가 지난 화창한 오후. 버질은 외출했고, 헤레이스는 집에서 섀도우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 헤레이스는 책을 읽었는데 이게 하필 연재 중이었던 신간이었던 거지. 출간일을 보니 몇 개월 전이라, 지금 쯤이면 다음 권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었어. 마침 바람도 선선하고 하늘에 구름도 적당하니 나가기 딱 좋은 날씨. 고민하던 헤레이스는 버질과 함께 들렸던 독립 서점에 가기로 한다.

 오늘의 경호는 그림자 속에 숨을 수 있는 섀도우니까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다녀올 수 있다. 버질과 여러 번 다녀왔던 곳이니 길도 알고.

 읽던 책 뒷 이야기도 궁금하고, 오늘은 왠지 별 일 없이 평화로울 듯한 기분이라 나가기로 하는 헤레이스. 후닥 옷 갈아입고 모자 하나 푹 눌러 쓰고, 그림자 속에 섀도우 넣고 집을 나선다.

 번화가로 나갈 때까지, 따사로운 햇살과 간간히 지저귀는 새들을 만끽하며 사뿐사뿐 걸어가는 헤레이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로 나왔을 때는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빠른 걸음으로 서점을 향했다.

 서점에 도착한 뒤는 정신 없이 책 속에 빠져들었고... 분명 다음 권만 사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서점은 그를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혼자 서점에 온 건 처음이라 ... 말을 거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책에 몰두하는.

 그러다 섀도우가 그림자로 툭툭 건드리는 거지. 주변 시선 없을 때.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아서... 그제야 다음 권 +읽고 싶은 책 몇 권 사서 서점을 나오는 헤레이스.

 근데... 건물을 나서려는데 들리는 추적추적 빗소리. 화창했던 날씨가 거짓이었단 듯 하늘은 먹구름이 껴 있고. 그렇게 오래 서점에 있었나 싶은 헤레이스. 어둑한 하늘이 먹구름인 건지 해가 진 건지 분간이 안 갈 만큼... 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이걸 어쩌지, 우산도 없고. 비 맞으며 뛰어가자니 기껏 구매한 책이 다 젖어버릴 것 같고. 지금 쯤이면 버질이 돌아오지 않았을까? 갑자기 나가서 걱정할 것 같은데. 이도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던 헤레이스에게 다가오는 인영 하나.

 버질이 마중 나왔다. 하늘색과 하얀색이 예쁘게 섞인 파스텔 색 우산을 쓰고.

 환해지는 헤레이스의 표정 보고 마주 웃는 버질.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걸어가는 두 사람. 섀도우는 어느 새 버질의 그림자 속으로 돌아가고. 헤레이스가 산 책 대신 들고 우산도 들고 무엇을 샀느냐 묻는 버질. 헤레이스는 책... 자신이 들려다가 버질이 대화를 시작하자 포기하고 대화에 참여하겠지.

 헤레이스는 치마 밑단만 좀 젖었는데 버질은 반대쪽 어깨가 축축하게 젖어있는 게 좋다.

 

 

 

3

 버질과 헤레이스의 집은 어떤 구조일까. 뻥 뚫린 1층에 여럿이 둘러 앉을 수 있는 큰 소파와 그 앞에 난로. 둘 사이 놓인 테이블에 작은 라디오 하나. 소파를 중심으로 벽을 가득 메운 책장과 수많은 책들.

 현관문 가까이 위치한 계단 위로 올라가면 침실과 욕실... 이 있고. 손님방도 있을까? 버질헤리는 둘 다 미니멀리스트라 안 쓰는 방은 건들지 않았는데 헤레이스가 손님방으로 꾸미자고 해서 생긴 거였으면. 가끔 단테 놀러오면 거기서 잘 듯.

 버질헤리의 일상은 어떨까. 대게 아침에 먼저 일어나는 건 버질. 드물게 헤레이스가 먼저 일어나면 .. 침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버질 자는 얼굴 구경한다. 두 사람은 꼭 붙어서 마주보고 자니까. 아니면 버질이 헤리 안고 자거나.

 잘 때 만큼은 풀려 있는 미간 한 번 눌러보고. 버질이 자신에게 자주 그러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볼 한 번 쓰다듬고, 사심을 담아 입술 꾹 눌러보고.

 장난 섞인 관찰을 하다 보면 어느 새 깨어난 버질이 반 쯤 뜨인 눈으로 헤레이스를 보고 있겠지. 버질과 눈이 마주치면 사르르 웃으며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하는 헤레이스.

 커다란 창 너머로 부서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받아 잘게 빛나는 머리칼이 작은 움직임에 흩어지고. 에메랄드를 닮는 눈동자가 애정을 품은 채 오롯이 본인을 향하는 아침.

 이젠 익숙할 만도 한 평화로운 아침이 매 순간순간이 소중한 버질이겠다.

 

 

 

4

 같이 소파에 앉아 나른하게 눈 감고 라디오 들으며 쉬고 있는데 클래식이 나옴. 버질이 슬그머니 일어나서 정중한 자세로 헤레이스에게 손 내밀며 춤 추겠냐고Shall we dance? 묻는 게 보고 싶다. 헤레이스는 기뻐하며 손을 붙잡긴 했는데 본인은 한 번도 춰본 적이 없다고 머뭇거린다, 버질이 괜찮다고 손 잡아 일으키고.

 헤레이스의 발을 본인 발에 올려 허리를 가볍게 끌어안아 팔 하나를 쭉 빼서 잡은 채 조용히 깔린 음악 따라 스텝을 밟는다. 헤레이스는 본인이 버질의 발을 밟고 있단 사실에 뚝딱거리는데 버질에게 헤리 무게는 그리 무거운 게 아니라서 개의치 말라며 자신의 움직임에 집중하라 하겠지.

 은은한 조명 아래 허공을 유영하듯 흔들리는 치맛자락과 그림자. 천이 스치고 마룻바닥이 삐그덕거리는 소음 마저 음악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겠지. 품을 가득 메운 온기와 허리를 단단히 받친 팔뚝, 부드럽게 그러쥔 손과 가만히 내려다 보는 유리 같은 눈동자.

 그냥 이 모든 순간, 이 자체가 전부 소중하고 사랑스러워서 새삼 벅차오르는 헤레이스. 마찬가지로 행복하게 환히 웃는 헤레이스 바라보며 마주 웃는 버질. 소소한 일상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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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순이

 

 헤레이스는 밖에 잘 안 나간다. 예전에 버질과 방랑 생활할 때도 거처로 정해진 곳이 있으면 거기서만 지냈다. 호텔 같은 숙박시설에 의탁할 때도 스스로 감금 생활 함.

 이게.. 버질이 나가지 말라고 한 건 아님. 본인이 신력 때문에 악마들에게 자주 노려지니까 괜히 나갔다가 악마 만나면 곤란해서. 그 악마들을 처리해주는 건 버질이고 본인은 버질을 따라 다니는 입장인데 혼자 갔다가 악마 마주치면 곤란하니까. 수습해주는 건 버질이고, 본인은 버질에게 신세 지는 입장(5 이전)이니 그를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밖으론 잘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활동적인 성격도 아니어서 심심하거나 외롭지 않았던 듯.

 5 이후 버질헤리에게 집이 생긴 이후로도 헤레이스는 나가지 않는다. 악마 만나면.. 어쩌구. 버질에게 신세 지는 건 아니지만... 나가서 악마라도 마주쳤다가 생기는 상황에서 버질에게 스트레스 주기 싫고, 본인도 악마는 만나기 싫고. 그냥 여러 모로 집이 편하고 안전하니 집에만 있음. 이따금씩 장 보거나 책을 사러 가는 것도 버질과 함께 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 집순이가 집에서는 무엇을 하느냐.

 버질헤리... 숲이 근처에 있는 인적 드문 곳에 아담한 집에서 살았음 좋겠다. 마당도 있고 화단도 있고... 뒷뜰이 숲과 이어진 넓은 들판 어쩌구. 번화가와 멀고 숲이 근처라 으스스한 감도 있어서 사람들이 꺼려하는 곳이었는데 그런 건 두 사람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한적하고 조용하다면 오히려 좋았으니...

 무튼 헤레이스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주아주 많다. 집에 tv는 없고 라디오는 있을 듯. 라디오 들으면서 책 읽거나 청소하거나 낮잠 자거나... 정말 소소하게 보내는 헤리. 키리에에게 요리 배워서 각종 음식이나 빵 같은 거 굽지 않을까. 처음 해보는 것들이니 서툴어서 망치는 게 많겠지만, 그에겐 남는 게 시간이니 하다 보면 많이 늘겠지.

 집에 있는다 해도 안전한 건 아니라서, 장시간 나갈 때는 꼭 사역마 한 마리 놔두고 가는 버질 보고 싶네. 그리폰 아니면 섀도우... 그리폰이 있으면 헤리는 라디오 안 켜놔도 됨. 오디오를 그리폰이 채워주니까.

 버질 어깨나 팔에는 잘만 올라가면서 헤레이스 위엔 절대절대 올라가지 않는 그리폰. 헤레이스가 인간이니 육체가 연약해서.. 무게가 꽤 나가고 발톱이 날카로운 그리폰이 자칫하면 헤레이스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그리폰은 헤레이스 근처를 떠나지 않지만 일정 거리 이상은 접근하지 않을 듯.

 섀도는 좀 다름. 평소에는 헤레이스 그림자에 숨어 있는데 단 둘이 있을 땐 이따금씩 모습을 드러내서 애교를 부리듯이 부비작 댄다. 헤레이스에겐 커다란 애완동물이 생긴 기분 아닐까. 게다가 움직임도 빠르니 여차하면 나타나서 헤리를 보호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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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갑자기 버질이 헤레이스에게 바이올린 연주 해주는 게 보고 싶다.

 어디서 들고 온 건지 받은 건지. 모닥불 앞에서 천천히 켜보는데 오랜만이라 좀 버벅이긴 했지만 곧잘 연주하는. 근데 연습울 데빌 메이 크라이에서 한 거임. 단테는 왜 자기 집에서 연습하냐고 투덜거림서도 버질이 바이올린 켜는 거 오랜만에 보니까 더 뭐라고 하진 않았을 듯. 어릴 적에는 무척 서툴렀는데, 지금은 어디서 연습이라도 해온 건지 매우 능숙하니까 괜스레 마음이 울렁거렸을 듯.

 연습 대충 끝내고 바이올린 주섬주섬 챙겨서 돌아가는 버질. 단테한테 간다 하고 짤막하게 인사하고 단테도 어어 하고 짧게 받아줬겠지.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형제고 그 모든 일이 있었기에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된 과묵한 쌍둥이 관계성 너무 좋닥.....

 그렇게 돌아가면 소파에 누워 잠든 헤레이스와 등받이에 걸터 앉은 그리폰이 있고. 버질이 인기척을 죽이고 조심히 들어와도 마룻바닥이 끼익거리는 소릴 낸다. 그러나 헤리는 깨지 않고. 날개 몇 번 퍼덕이던 그리폰은 드물게 입 다물고 얌전히 버질의 내면으로 사라지겠지.

 팔걸이에 비스듬히 앉아 헤레이스의 잠든 얼굴을 빤히 내려보는 버질. 너른 호흡마다 들썩이는 어깨가 아니었다면 숨을 쉬는지 확인해야 할 정도로 조용히 자는 헤리...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 넘기며 정리하고 손 끝으로 턱선을 따라가다 스친 입술 한 번 눌러보고. 그런데도 깨지 않는 헤레이스의 볼에 입술을 꾹 내리누르곤 나지막이 부르는 거지. "헤레이스."

 여전히 비몽사몽한 헤레이스가 조금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바라보면 공연하는 사람처럼 앞에 자리를 잡고 바이올린을 켜주는... 버질 보고 싶네.

 헤레이스가 멍하니 그걸 바라보고, 이게 꿈인가 싶고. 연주 다 끝나고서야 픽 웃으면서 어땠냐고 묻는 버질이 넘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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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연인

※ 트라우마를 자극 받은 어린 아이의 묘사

 

 

 어린 애들은 등 따숩게 지지면서 맛난 거 먹고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야 하는데 내가... 이런 앵스트 좋아해서 미안하다....

 어린 헤레이스는 버질을 보자마자... 여지껏 본 악마 중에서 제일 거대하고 압도적인 기운을 느꼈겠지. 버질은 그냥 내려다 보는 건데 헤레이스는 시선에도 짓눌리는 감각에 겁에 질렸다.

 교단은 자주 신력을 끌어 올린답시고 어디선가 악마를 데려오거나 소환해서 헤레이스와 가둬놓고, 신력이 원하는 만큼 강해질 때까지 시간을 끌었는데... 헤레이스는 이번에도 그런 줄 아는 거지.

 근데 버질이 웬만큼 강해야지. 그런 잔챙이들이 아니라 그냥 그의 손짓 한 번에 전신이 으스러질 듯... 헤레이스는 자신을 코끼리 앞의 개미라고 생각했다. 시간을 끌고 자시고 그냥 그 자리에서 목이 잘리거나 온 몸의 피를 뺏기거나 장기를 내어주거나... 아무튼 그냥 죽겠다는 생각 밖에 안 든 거야.

 버질이 눈 앞의 아이가 헤레이스의 어린 시절 모습이라는 걸 깨닫고 신기한 기분으로 감상하다가 문득 애가 굳어서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미동이 없는 걸 발견하고 이상함을 감지해 손을 뻗자 버질의 눈동자만 빤히 올려보던 헤레이스가 발작하듯 벌벌 떨며 빌기 시작해.

 착한 성녀가 되겠다든가. 말 잘 듣겠다든가, 이젠 불평하지 않겠다든가. 아픈 것도 잘 참을 거고 밥 투정도 안 하겠다고... 횡설수설 해. 작고 마른 몸을 바닥에 한껏 낮추고, 누가 봐도 목숨을 구걸하는 작태에 놀란 건 버질. 당황해 굳은 그의 귓전에 절박한 목소리가 계속 맴돌지.

 그리고 떠오르는 거야, 헤레이스가 버질을 만나기 직전까지 어떤 상황에 놓여있었는지. 안 좋은 기억을 떠올려서 헤리를 힘들게 할까 봐 자세한 건 묻지 않았었어.

 기억이 희미한 어릴 적부터 신력을 이용 당했다고는 들었지만 설마 이렇게 어릴 줄은 몰랐지. 똑바로 서면 그의 허벅지에 머리가 닿을락 말락 한 어린 앤데...

 그 교단은 이미 없어졌겠지만... 분노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조용히 감정을 삭인 버질은 순간적이었던 제 감정을 기민하게 알아 차리고 숨이 넘어가려는 아이에게 순식간에 다가가 안아올려. 되려 천천히 다가갔다가 겁을 먹고 발작이 심해지면 안 되니까, 아예 인지하지 못하는 속도로 몸을 일으켜 진정 시키는 게 낫겠다 판단한 거지.

 다행히 버질의 시도는 먹혔고, 어린 헤레이스는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며 떨기만 할 뿐 기절하지는 않았어. 과호흡이 오긴 했지만 이건 진정 시키면 괜찮아 지니까... 얼른 꼬옥 안아준다. 그러고 등 토닥토닥.

 괜찮다든가, 걱정 말라든가. 아무것도 안 한다든가. 안전하다든가. 버질이 내뱉기에는 어색한, 그러나 헤레이스에게는 여러 번 곧잘 해줬던 말들을 나지막이 읊자 차츰 진정하는 어린 헤리.

 여전히 히끅거리며 울기는 하지만 과호흡과 떨림이 줄어서 내심 다행이라 생각하겠지. 그런 헤리 안아들고.. 일단 돌아가는 버질.

 집으로 가기엔 좀 그러니까 단테한테 가지 않을까. 사실 이 사태를 혼자 해결하기엔 어렵다고 판단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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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시아

※ 드림커플과 네로키리의 2세 설정

 

 버질이 단테와 함께 의뢰를 다녀온 며칠 새, 뭔 일이 있었는지 헤레이스 옆에 붙은 사람이 있었어. 헤리보다 크고 탄탄한 체격의 여성이었는데 뭔가 감추고 싶은 게 있는지 머리는 모자에 몽땅 욱여넣어 푹 눌러 써 머리 색과 눈동자가 잘 보이지 않았지.

 수상한 게 한둘이 아닌데 헤레이스는 그에 대한 경계가 없었어. 낯선 이에 대한 경계가 심한 헤리가 그럴 정도면 버질도 충분히 믿을 수 있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시감이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해. 은근히 시선으로 좇으며 경계를 하겠지.

 네로, 키리에와 약속이 있던 헤레이스는 그 이방인을 단테와 버질 두 사람에게 맡겨두고(in데메크) 다녀옴. 그 사이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려나. 어디서 왔는지 어떤 사람인지.

 그런데 이방인은 말을 아껴. 두 사람을 경계하진 않는데 들키면 안 되는 게 있는지 행동이나 말 하나 조심하는 게 느껴진달지. 더 이상한 건 단테와는 스스럼 없이 말을 나누는데 상대가 버질이 되면 가시를 세우듯 신경이 곤두선다는 거야. 단테가 눈짓으로 뭔가 아느냐 물었는데 버질은 당연히 모르지.

 아무튼 서로 아무런 수확이 없는 채 불편한 시간만 흘려보내고 헤레이스가 돌아왔어. 옆에 배가 부른 키리에와 그 보호자인 네로를 동반한 채로. 어딜 다녀왔나 했더니 산부인과에 다녀왔대. 그리고 헤리도 검사를 해봤다는 거야. 결과는 임신 7주. 초음파 검사 한 사진 보여주면서 우물쭈물 털어놓겠지. 전부터 뭔가 심상찮아서 키리에에게 상담했는데 역시나 임신이었다고. 그동안 말 안 한 건 확실하지도 않았고, 놀래켜주고 싶었다나.

 버질과 단테가 어리둥절했다가 경악하고 기뻐할 찰나에 갑자기 찰나를 가르는 움직임으로 헤레이스 앞에 도달하는 이방인. 그런 기습을 저지한 단테와 버질. 네로는 벌써 키리에와 헤리의 앞을 막고 있었고. 범인인 헤레이스 눈에는 1초도 안 되는 프레임 안에 장면이 바뀐 기이한 순간이지 않았을까.

 헤레이스의 손에 든 초음파 사진을 보고 이성줄이 끊어진 것마냥 날뛰기 시작하는 이방인. 기쁜 순간을 망쳐버려 기분이 좋지 않고 헤레이스가 임신했단 사실에 과보호가 더 심해진 버질이 당장이라도 이방인을 썰어버릴 기세인데 그걸 말린 게 단테겠지. 버질이 기시감을 느꼈던 만큼 단테도 뭔가 느꼈음. 뭔지는 모르겠는데, 왠지 오래 전 네로를 처음 만났던 시절이 떠올라서 사정을 들어보기로 한 거지. 임신한 두 여성 앞에서 피를 흩뿌리기도 뭐해서 겨우 화를 억누르는 버질.

 그런데 이방인은 발언권을 얻자마자 애를 지우라는 말을 해버리고. 여기서 화낸 건 네로겠지. 뭔 개소리냐고.

 근데 횡설수설 다급하고 절박하게 울부짖던 이방인이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고 "나"를 포기하라고 해서 모두가 어리둥절.

 홧김에 숨겨야 했을 사실을 털어놓은 이방인이 입을 꾹 다물고 얌전해졌는데 거기서 유일하게 움직인 게 헤레이스. 단테가 이방인을 누르고, 당장 목을 벨 수 있게 칼을 목에 겨눈 버질이 있지만 헤리가 가까이 다가오는 건 위험해. 두 사람이 말려도 헤레이스는 괜찮다며 다가가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바닥에 엎드린 이방인의 두 얼굴을 조심스레 잡으며 말해. "혹시 당신의 이름이 엘리시아인가요?" 헤레이스를 처음 만나고 지금까지 제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던 이방인이 티 나게 놀라며 그걸 어찌 알았냐 물어. 헤레이스는 빙그레 웃으며 "아이가 아들이면 루이스, 딸이면 엘리시아라고 지어주려고 했거든요."라고 말하지.

 그래, 헤레이스는 이방인이 자신의 딸인 걸 알고 있었어. 처음부터 안 건 아니고 버질과 단테가 느꼈듯 헤레이스도 그에게서 의문 모를 기시감과 익숙함을 느꼈고 이방인이 헤리를 굉장히 다정하게 대해주거나 본인의 버릇이나 습관, 조심해야 할 것을 미리 알고 선뜻 배려해줬던 것, 방금 전 그의 말실수를 조합해 방금 확신한 거지. 어떤 사정인진 모르나 눈앞의 여성이 버질과 자신의 핏줄이 확실해.

 이 모든 상황을 차분하게 받아들인 헤레이스와, 엘리시아라는 이름을 듣고 울음을 터뜨린 이방인... 상황이 어지러운 사람들... 특유의 부드러운 어투로 상황을 정리하고 단 둘이 얘기하게 해달라는 헤레이스. 데메크 홀에 마련된 좌석에 둘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그 근처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얘기를 같이 듣는 사람들.

 이방인, 엘리시아는 버질과 헤레이스의 딸. 그리고 악마와 천사의 힘을 함께 가진 네피림이라고 소개 해.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버질은 몰라도 헤레이스는 신력이 거의 없는 인간과 다름없는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이 기가 막혀. 두 사람은 물론이고 단테도 어느 기점부터는 시간이 고정된 것처럼 나이를 먹지 않았대. 그래서 엘리시아가 기억하는 두 사람은 엘리시아가 스물이 넘는 나이가 될 때까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외형을 가졌다지. 그게 신력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면 달리 설명이 안 되잖아.

 엘리시아의 시간선에서는, 바로 한달 전에 헤레이스의 장례를 치렀어. 엘리시아를 지키려다가 살해당했대. 엘리시아의 존재는 악마와 천사 두 개체에게도 아주 이질적인 존재라서 그를 두고 사달이 났나 봐. 정작 본인은 헤리와 버질이 오랜 시간 인간 사이에 부대껴 살았던 것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 두 세계가 가만두지 않았지. 회유를 하든 협박을 하든 설득을 하든 거래를 하든 ... 어지러운 상황에서 발생한 분쟁에 휘말렸다가 헤레이스가 절명한 거지.

 엘리시아는 죄책감을 가졌어. 본인 탓에 헤레이스가 사망했으니까. 성인이라도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 상황에 버질은 어딘가로 사라졌고(여기서 버질을 향한 날 선 시선과 알 것 같단 시선 몇 가지). 혼자 방황하던 도중 어떤 천사가 나타났대. 과거로 돌아가게 해주겠다고. 과거로 가서 자신이 태어나지 않게 만들면 이런 분쟁도 없을 거고 헤레이스가 죽지도 않을 거라고. 엘리시아는 그걸 받아들였지. 본인이란 존재가 사라지는 건데 엘리시아는 괜찮다고 생각했어. 그 말을 듣고 표정이 굳고 화가 난 건 헤레이스.

 어쨌든 엘리시아는 그러려고 시간을 넘었어. 처음에는 만나자마자 설득하려고 했지만 헤레이스와 다시 함께하는 시간들이 너무나 달아서 시간을 끌다가 임신 사실을 알게 돼버렸고. 긴박한 상황에 눈이 돌아가 본인의 손으로 유산 시켜버리려고 했지만 보기 좋게 막혔고(지금와서 생각하면 다행이라고 하는 엘리: 내 손으로 엄마를 해칠 뻔 했어).

 엄마를 위해 나를 포기하라고 애걸하지만 헤레이스는 완고해. 그럼에도 당신을 낳을 거예요. 태어나는 순간에 이름을 부르고, 품에 안아 생명을 실감하고, 다정히 사랑을 속삭이며 엘리를 우리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싶어요. 분쟁이 일어나 사달이 나는 건, 지금 이렇게 엘리시아에게 소식을 들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제 옆엔 엘리도, 버질도 있으니까요.

 그 두 사람이 있었으나 그 사달에 지키지 못해 정신이 터져나간 부녀인데 엘리시아는 말을 아끼고. 헤레이스가 미래에 죽는단 확신을 듣고 불안해진 버질.

 어찌저찌 해서 결국 헤레이스를 설득하지 못하고 제 시간으로 돌아가는 엘리시아. 마지막에 한 번만 안아봐도 되냐고 물어보고. 헤레이스는 흔쾌히 품을 내주지. 그 뒤에서 버질은 마지막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는데 그런 버질을 보고 아버지는 이때부터 여전했구나, 하며 쓰게 웃는 엘리. 헤레이스를 품에 가득 안자 그리운 과거가 스쳐지나가고. 결국엔 눈물을 짓겠지. 작지만 따뜻하고 부드러운, 절대 잊지 못할 어머니의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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