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 스위트룸
카테고리
작성일
2023. 12. 10. 21:38
작성자
순묵애빛

※ 원작 캐릭터와 자작 캐릭터가 엮이는 드림물

※ 드림주 설정, 이름 有

주술회전 원작, 게토 스구루 HL 드림 +a

 

 

 

 

몇 달 전에 트위터에서 혼자 했던 800자 챌린지...

주술회전 드림도 몇 번 썼는데 생각해보니까 티스토리에 개시를 안 했다

생각난 김에 올림!

챌린지 했던 트윗 타래

 

 

원래 장편 소설 쓰려고 이것저것... 플롯도 짜고 준비했는데 다른 거 쓰느라 얘를 신경을 못 씀..

그래서 챌린지 하면서 짧게 나마 보고 싶었던 장면들 주절주절 썼다.

훗날 또 800자 챌린지 하게 되면 또 풀어봐야디,,,

 

 

 

 

 

Unsplash 의 Darius Cot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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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아침식사

 

 

 도쿄고의 주방은 아침 8시가 되면 항상 맛있는 냄새로 가득 찬다. 밥심의 민족인 란이 기어코 이곳에서 ‘아침 식사는 다같이’를 전파한 탓이다. 란은 머리에 두건을 쓰고 앞치마를 두른 채 부엌 이곳저곳을 바삐 돌아다녔다.
 임무로 바쁜 동급생들을 데려다가 직접 지은 밥을 먹인 게 시작이었다. 처음에 란은 영양도 챙길 겸 맛있는 밥을 빌미로 친해지고 싶어서 친구들을 초대했다.
 예상 외였던 건, 동급생들이 그의 요리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했다는 것. 란이 저녁을 차리는 시간에 맞춰 은근슬쩍 나타난다던가, 교실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는 등 은근히 식사를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걸 깨달았을 때 얼마나 뿌듯했던가. 비정기적으로 모였던 저녁 식사는 참여율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아침으로 바뀌었다.
 주술고전은 이상한 부분에서 상식을 고집한다. 장기 임무가 아닌 이상, 오전은 되도록이면 건드리지 않은 덕에 도쿄고 학생들은 제 시간에만 일어난다면 따뜻하고 푸짐한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선배.”
 “란 누나, 좋은 아침! 오늘도 냄새 장난 아니네요!”
 물론 다른 학년도 포함이다. 오늘의 1등은 란이 매우 아끼는 1학년 후배들이었다. 나나미와 하이바라는 익숙한 태도로 냉장고로 다가갔다.
 란의 식사 규칙은 간단하다. 먹을 반찬은 알아서 꺼내기. 밥과 국은 먹고 싶은 만큼 스스로 담기. 식기와 그릇 설거지는 각자.
 아주 기본적인 규칙만으로 아침 식사를 지금껏 유지한 이유는 참여자들의 역할이 컸다.
 어느 새 일상에 자리 잡은 아침 식사는 란의 호의로 시작됐다. 그가 싫증이 나면 언제고 깨질 수 있는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이를 지키려면 모두의 협조가 필요하다. 때문에 그 고죠도 식사 예절만은 누구보다 칼 같이 지켰다.
 “다들 좋은 아침~ 웬일로 셋이 같이 오네?”
 두 명의 선배 다음으로는 란의 동급생 세 명이 한꺼번에 입장했다. 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란의 인사를 받으며 식기와 그릇을 챙겼다. 드디어 참여자가 전부 모인 복작한 아침의 시작이었다.
 아침부터 의뢰가 있는 사람, 먹는 속도가 빠른 사람들은 먼저 일어났다. 그 중에는 란의 친구인 게토도 있었다.
 “스구, 잠깐만.”
 짧고 공손한 말과 함께 일어나는 게토를 부른 건 란이었다. 란은 먹다 말고 몸을 일으키더니 밥솥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밥솥 위에 올려져있던 네모난 무언가를 챙겨 딱 맞는 사이즈의 천주머니에 넣어 게토에게 건넸다. 누구는 어리둥절, 누군가는 설마 하는 표정을 지을 때 란은 해맑은 미소와 함께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시락이양!”
 “으응?”
 “전에 먹고 싶다 했던 한국의 불고기랑 비빔밥. 장기임무 간다길래 챙겨주고 싶어서~ 식사 거르지 말구 잘 다녀와! 아, 도시락통은 싸구려니까 버려두 돼~”
 갑작스런 선물 아닌 선물에 당사자도 굳었다. 유일하게 방관자로 이 사태를 관망하던 이에이리는 건너편에 앉은 고죠가 입을 달싹이는 걸 보고 이내 폭탄이 떨어지리라 예상하며 그릇과 식기를 챙기고 자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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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형

 

 

 최강의 세대라고 불리우는 이들도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학생. 즉, 평범한 또래가 관심을 가지는 화제로 열띤 토론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다. 어디까지나 주술사도 인간이니까.
 핸드폰을 꾹꾹 눌러대던 이에이리가 내뱉은 말이 시발점이었다. 모처럼 생긴 자율 시간이니 낮잠을 자려는 사람과, 운동장에 나가려는 사람, 책을 읽으려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에이리가 돌연 유행 중인 화제를 꺼냈다.
 “너희 이상형 있어?”
 사춘기 청소년들의 유구한 화제. 친해진 친구들 사이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 주도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이에이리가 자극적인 얘기로 주목을 끈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혀 그런 걸 궁금해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물어봤다는 의문은 뒤로 밀어두고, 또 다시 의외로 란이 금방 답을 내놓았다.
 “나 있어!”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턱을 괸 이에이리가 씩 웃으며 되물었다.
 “호오. 어떤 사람?”
 란은 턱을 짚으며 깊게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팔을 뻗어 뒤에 있는 책상에 손을 얹었다.
 “스구!”
 “어?”
 “뭐?”
 격이 다른 폭탄 발언은 나머지 세 사람이 얼 빠진 표정을 짓게 했다.
 “…스구루 같은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아니, 스구!”
 란은 평소와 다름 없는 앙글앙글한 미소를 띄고 고개를 끄덕였다.
 드문드문 일어에 서툰 란이 이상형과 좋아하는 사람을 헷갈린 건가? 다른 의미로 알아들어서 저런 대답이 나온 거라면 상황이 더욱 파격적이다. 공개고백이나 다름 없으니까.
 살면서 고백은 많이 받아봤지만 설마 절친에게 이성적으로 호감이 있다는 이야기를 대놓고 들어본 적은 없어서 게토는 곧장 반응할 수가 없었다. 애써 덮어놨던 기억과 감정이 썰물에 씻겨 나가듯 훤히 들어나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머리와 몸이 동시에 굳은 당사자보다 격한 반응을 보인 건 고죠였다. 이에이리는 즉답을 듣고 좀 놀라긴 했지만 곧 흥미로운 얼굴로 상황을 관망했다.
 “이, 이 자식 어디가!?”
 “스구는 상냥해! 타인에게 친절할 줄 알고 약자를 진심으로 걱정해줘.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할 수 있는지 항상 생각해. 항상 자아성찰을 하면서 내적으로도 성장하려는 모습이 멋있어! 여우처럼 쭉 찢어진 눈이 귀엽고, 긴 머리카락을 세심하게 관리해. 잘생겼어! 옷도 잘 입어. 가끔 사복을 보면 모델 같아. 모두를 설레게 만드는 상냥함인데 본인은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니라 당연한 배려라고 생각하는 게 멋— 어엇, 스구… 우, 울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삿대질하며 묻는 고죠에게 란은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 대답했다. 손가락을 펼쳐 하나씩 접어가며 조곤조곤 말하는 사항들이 생각보다 많고 세세해서, 이에이리도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란의 열띤 주장은 게토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끝을 맺었다. 신나서 말하던 란은 게토가 책상 위로 엎어지자 화들짝 놀라며 안절부절 못했다. 함부로 이것저것 말해서 미안하다며 사과까지 한다.
 엉거주춤 일어난 채 얼빠진 고죠와 부끄러움을 참지 못해 무너져버린 게토, 부끄럼 한 점 없는 진심 어린 칭찬의 여파를 깨닫지 못하는 란과 본인이 초래한 이 상황을 수습할 생각을 않는 이에이리. 기록적인 총체적 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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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합니당

 

 

 란은 교류회가 처음이다. 작년에 편입 왔을 땐 이미 교류회가 끝난 시점이었다. 후배들과 함께 선배와 친구들에게서 교류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란의 반응은 다음과 같다.
 “그냥 어르신들이 으스대려고 좋게 포장해서 학생들끼리 싸움 붙이는 거 아니양?”
 대놓고 반응을 보이면서 수긍하는 이들과 침묵으로 동의하는 이들로 나뉜 가운데, 다소 버릇 없는 발언을 지적한 건 우타히메가 유일했다.
 일본에 존재하는 주술고전은 도쿄와 교토 단 두 곳 뿐. 주술계가 비교적 여유로워지는 가을에 두 학교 학생들 간의 대련을 주도한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어린 주술사들의 실력 증진이라고 하지만, 경험자들의 이야기나 작년에 이긴 학교에서 이번 교류회가 열리는 규칙 같은 게 순수해 보이진 않는다. 정말로 학생들 실력을 기르기 위한 순수한 대련이었다면 뒷 얘기들이 오고갈 리 없잖은가.
 “뭐어, 주술계가 다 그렇지.”
 란은 그 한 마디로 교류회를 일축해 버렸다. 이 나라에서 이 바닥이 얼마나 치졸하고 역겨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는 절대로 자신의 본 실력을 드러내지 않겠다 선언했다. 오히려 익숙지 않은 기술이나 새로운 술식을 연습하겠다는 말이나 한다. 선배인 우타히메가 상대 학생을 위해 진심을 다 하는 배려를 다 하라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충고를 받아들이는 후배는 없었다. 오히려 2학년들은 자기들도 그럴 거라며 동조했다.
 교토고는 아무래도 고삼가 같은 주술사 가문과 가까운 곳이라 그런지 융통성 없고 보수적인 치들이 많았다.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의 도쿄고와 달리 등급이나 실력보다는 가문의 위력이 서열을 나누는 듯했다.
 란은 그 중에서도 누구보다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오만한 시선으로 눈을 굴리는 이를 보았다.
 “마, 그짝이 옆나라서 오셨다는 준 특급이여?”
 우연히 같은 타이밍에 서로를 보았다. 교토고 1학년 젠인 나오야가 턱을 살짝 치켜든 채 란을 주시했다.
 그를 첫눈에 알아볼 리 없는 란이 손만 슬렁슬렁 흔들어 인사 하고는 당연한 물음을 던졌다.
 “응. 안녕! 넌 누구양?”
 머리가 샛노란 1학년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그것을 감지한 란이었지만 신경 쓰지 않고 들려올 답을 기다렸다.
 젠인 나오야는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반발하려는 측근들을 손을 드는 것으로 만류하고 한 걸음, 두 걸음 내딛었다. 그리고는 1m를 두고 란 앞에 서더니 선심 쓰듯 말했다.
 “젠인 나오야. 니 서방님 될 사람이여.”
 “뭐!?”
 “무리! 넌 내 취향 아니양!”
 “하?”
 순식간에 지나간 폭탄 발언. 도쿄고 측에서 연쇄 반응이 일어나기 전, 란이 명랑한 어조로 칼 같이 거절했다.
 “가문 간 이야기면 내 알 바 아니구, 개인적인 호감? 이면 거절! 난 비혼주의자라서~”
 물론 연애도 안 행! 일본 내에서 저명한 주술사 가문 중 하나, 젠인. 또한 그 젠인 가의 차기 당주가 내뱉은 무거운 이야기를 란의 담백하고 단호한 언동이 한없이 가벼운 해프닝으로 만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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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한 번 해보자고

 

 

 주술고전 학생이라도 엄연한 주술사. 그런 말을 내세우는 주술계는 학생이라는 얄팍한 칭호만으로는 아이들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주술사가 귀하다면서요. 그렇다면 최소한 학생은 보호 해줘야죠. 주술사 가문에서 자란 애는 모를까, 비술사 출신은 겨우 학교에서 기본을 배워요. 입학 안 하면 범죄자 된다고 반 협박해서 끌고 와놓곤 제대로 가르친 것 없이 자칫하면 죽는 임무에 밀어넣는 건, 뭐 어쩌자는 거예요? 예? 말씀해보세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단호한 태도. 란은 저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후배들을 등지고 서서 고저 없는 음정으로 쏘아붙였다. 뒤통수 맞은 듯한 얼굴로 입만 달싹이던 백발 노인들이 뒤늦게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모든 말을 생활 소음처럼 조용히 듣고만 있던 란은 앉아만 있던 이들 중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긴장의 끈을 하나 풀었다. 그러자 란을 기준으로 보이지 않는 기파가 터져 나갔다. 일어나려던 노인 한 명이 쓰러지듯 다시 앉았다.
 깔끔하게 다듬어졌어도 어디까지나 주력. 노리고 풀었는지 뒤에 서 있던 두 후배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상층부거나 그와 가까운 높은 사람들일 텐데. 나나미가 다급하게 멀쩡한 손으로 란의 어깨를 잡았다.
 “선배, 진정하세요.”
 “유우, 켄토. 먼저 들어가.”
 “저희도 같이—”
 “감히 우리 앞에서 성질을 부려!”
 후배들이 말리는 와중, 호통을 치는 사람이 있었다. 화통 삶아 먹은 음량과 진득한 주력에 나나미와 하이바라가 움찔거렸고, 란은 차갑게 언 얼굴에 희미한 호선을 띄웠다. 이 순간을 기다린 것처럼.
 “잊었나본데, 난 당신들 아랫사람이 아니에요. 내가 여기에 왜 있는지 다시 생각해 봐요.”
 “이—!”
 “아니면 대표로서 이야기 할까?”
 당신네들 대신 보낸 사람들 모셔오세요. 어수선했던 공간에 갑작스런 적막이 내려앉았다. 분명하고 담백한 한 마디에 꿀 먹은 사람처럼 노인들의 입이 다물렸다. 하이바라와 나나미가 의문을 가질 즈음, 란이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오늘 끝장을 봐야겠당! 먼저 가. 여기부턴 관계자외 출입금지!”
 “선배!”
 “나도 많이 참았어. 알지? 나중에 전부 설명해줄게. 지금은 2학년 교실 가서 쇼코한테 치료 받아. 물어보면 사실대로 말하구.”
 어른들을 상대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상냥함. 평소와 다름없는 부드러운 얼굴로 후배들을 마주한다. 숨기지 못한 불안과 걱정이 스며든 이들을 보던 란은 두 사람의 등을 밀었다. 그는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어쩔 수 없이 밀려난 후배들에게 순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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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어딨어

 

 

 주령 마다 주력이나 술식에 차이가 있는 건 당연하다지만, 이런 기하학적인 상황이 발생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란은 오랜만에 아파오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뭐, 그래도 아예 없다고는 못하지. 어디의 대해적 시대처럼 말이야, 이쪽도 요상한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아. 여전히 주력을 과학적으로 온전히 증명해내질 못했잖아.”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고죠 사토루가 란을 위로했다. 한가로이 나불거리는 언동에서는 배려나 예절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낯선 이에게서 친절을 기대하지 않았던 란은 신경 쓰지 않았다.
 주령이 만들어낸 어떠한 구멍에 빠졌더니 다른 세계로 건너와 버렸습니다. 어딘가의 가벼운 소설 제목과도 같은 상황에 처한 란은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홀로 생각해서 해결책이 나올 리 없고, 원인인 주령은 이쪽에 없고, 란이 사라지는 걸 봤으니 원래 세상의 친구들이 어떻게든 해줄 거라는 신뢰가 있었기에 비교적 침착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어쩐지 기다리다 보면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근본 없는 감이 들기도 했고.
 그래서 란은 기다리는 동안 이쪽의 고죠 사토루와 이야기를 나눠 보기로 했다. 미리 말하건데, 가벼운 혀로 성질만 살살 긁어대는 상대에게 배로 돌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근데 고죠 군, 이쪽의 스구… 게토 군은 어디 있어?”
 친구들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란에게는 제일 먼저 나올 수밖에 없는 물음이었으나 그는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 다른 세계의 절친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을.
 줄곧 빙글빙글 웃기나 하던 고죠 사토루의 입꼬리가 순식간에 내려가고 주변의 기류가 쩡 굳었다. 수 초의 반응에서 그제야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린 란이 말문이 막혔을 무렵, 고죠 사토루의 입이 작게 열렸다.
 “너희 쪽은 스구루가 있구나.”
 “…갑자기 지뢰 건드려서 미안해. 근데 확인은 해야겠어. 혹시 여기는 게토 군이 없어?”
 당장 이 자리에 없는 게 아니라, 하늘 아래 살아있지 않느냐는 말을 돌려 한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고죠의 고개가 란을 향해 돌았다. 천으로 눈을 가렸는데도 감긴 눈은 그의 눈동자를 직시하고 있다.
 란이 강한 주력 반응과 함께 창공을 깨뜨리며 나타난 순간부터 며칠 간 왼종일 그와 붙어 있었던 고죠 사토루는 란이 저와 이에이리 쇼코에게만 대가 없는 친절과 바보 같은 상냥함을 보였던 걸 떠올렸다. 란은 그들의 친구라고 했다. 그리고 그 친구에는 고죠 사토루가 직접 목숨을 끊은 게토 스구루도 포함되어 있다.
 고죠 사토루는 천 아래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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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함

 

 

 지금껏 단 한 번도 란의 주력을 제대로 읽지 못한 고죠였다. 언젠가 꼭 그의 주력을 밝혀내겠다고 이를 갈긴 했으나 이런 식으로 확인하기를 바란 건 아니었다. 고죠는 반쯤 잘린 왼팔을 쥔 채 무력하게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다.
 조잡하게 얽히고 설켜 란의 전신을 감쌌던 일종의 보호막은 온데간데 없고, 단어 그대로 타들어간 주력의 잔예만 희미하게 남았다.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어쨌거나 죽어가는 주술사의 형상을 한 란. 주술사로 살아가며 소중한 이의 죽음을 각오했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에서 직접 마주하는 것과는 궤가 다르다. 고죠는 떨림이 멈추지 않는 손을 그저 내버려두었다. 그는 제 몸이 덜덜 떨리고 있다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했다.
 “사토루.”
 머리가 굳어 사고되지 않는 뇌와, 불안정한 심리 탓에 흔들리는 주력.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기는커녕 악화만 되어가는 친구를 진정 시키기 위해, 게토 스구루가 고죠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았다. 날뛰던 주력의 파장이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손 놔, 멍청아. 혈액순환 안 된다고.”
 란이 선물한 머리띠를 쓴 이에이리가 퉁명스레 말했다. 훤히 드러난 이마에는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다크서클이 짙게 늘어져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는 엉망진창인 상태에 반해 평화로운 얼굴로 잠들어 있는 란을 쏘아보았다. 그 분위기가 손에 든 메스로 동맥을 그어버릴 것처럼 살벌해서 게토가 불안한 목소리로 한 번 불러 볼 정도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돼.”
 “우리가 옮기면 되는 거 아니야?”
 “…지금 란은 불어터진 만두피를 겨우 기워놓은 거나 다름 없는 상태야. 잘못 건드리면 기껏 꼬매둔 게 다 풀린다고. 여기서 끽하면 진짜 죽어. 그러니까 객기 부리지 말고 얌전히 있어.”
 너희 주력도 거의 안 남았잖아. 진심으로 그 상태로 중환자를 옮길 생각이냐는 표정에 고죠는 입을 비죽거리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게토 역시 쓴웃음을 머금으며 곤히 잠든 이를 내려다 보았다. 얕지만 분명한 호흡을 하며 평온히 자고 있는 란. 게토는 아찔했던 순간을 되새기면서 눈을 감았다. 어쩐지 하늘에 대고 두 손을 맞잡고 싶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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