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 스위트룸
카테고리
작성일
2022. 2. 20. 17:30
작성자
순묵애빛

※ 원작 캐릭터와 자작 캐릭터가 엮이는 드림 소설

광마회귀 이자하 연인 드림

원작 소설 425화 기준

 

+220727 대사 수정

 

 

 

 

 

 

 

 

 

 

 

 

 

※ 필자가 무협에 대한 지식이 부족함

 무협 배경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묘사/서술이 있을 수 있음

 지적은 감사히 받습니다! (비난X)

 

Photo by Diego PH on Unsplash

 

 

 

 

 

 

 

 검마와 육합은 다같이 밥 한 끼 먹자는 서찰을 받았다. 하오문의 문주이자 사대악인 중 셋째인 이자하는 오랜만이라며 사적인 모임을 도모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 이가 먼저 연락했다는 건 시끌벅적한 걸 좋아하는 그의 연인이 돌아왔다는 뜻. 맏형인 검마가 있다면 그렇게 소란하지 않지만 설은 북적북적해서 즐겁다며 사대악인이 모두 모인 걸 좋아했다.
 연인이 좋아하는 거라면 전부 해주고 싶어하는 하오문주는 당연히 형제들에게 연락했고 때마침 함께 수련하던 첫째와 둘째는 함께 일양현으로 향했다. 급할 것도 없으니 한나절을 꼬박 걸었다. 검학을 주제로 꺼내니 이야깃거리는 차고 넘쳐 오는 길이 지루하지는 않았다.
 
 "어서오십쇼!"
 "오랜만이오."
 
 험악하게 생긴 우락부락한 사내 둘이 들어서자 곳곳이 부자연스럽게 조용해졌으나 미리 언질을 받았던 장득수가 친근하게 두 사람을 맞이하니 분위기가 풀어졌다. 일손을 돕던 요란 역시 쪼르르 달려나와 그 옆에 서 예를 갖췄다.
 
 "그 사이에 더 컸구나."
 "역시 애들은 성장이 빠르다니까."
 
 진지한 태도로 인사를 올린 요란은 풀어진 사부들을 마주하며 배시시 웃었다.
 
 "셋째 사부님은 이층에 계세요."
 "요란이가 안내해드릴 겁니다. 저는 준비할 게 남아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사대악인은 물론 전 마교 교주의 입맛에도 맞았던 장득수의 요리는 당연히 우설도 좋아했다. 자하의 부탁으로 의형제들과 우설에게 대접할 음식을 준비하느라 장득수는 오늘도 매우 바빴다.
 검마와 육합은 웃는 얼굴로 빠르게 멀어지는 점문의 수장을 응시하다 계단을 가리키며 앞서가는 요란을 따라갔다.
 시간이 지나며 성장하고 배움이 늘어도 요란의 명랑함은 여전했다. 무뚝뚝한 두 사내는 재잘재잘 늘어놓는 어린 제자의 말을 경청하며 이따금씩 맞장구만 쳤고 요란은 간만에 보는 사부들에게 할 말이 많았는지 쉼없이 입을 열었다. 수련의 진척이라든가, 일양현은 요새 어떻다든가. 덕분에 그들은 이자하가 있는 곳까지 단숨에 도착했다.
 
 "셋째 사부님, 저 요란이에요. 사부님들이 오셨어요."
 
 요란이 문 앞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에서 작게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발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지더니 커다란 문이 활짝 열렸다.
 
 "어서 와."
 
 여전한 이자하가 무던한 얼굴로 두 악인을 맞이했다. 몇 번 보긴 했으나 멀끔한 의복을 갖춰 입은 문주에게선 약간 위화감이 느껴진다. 그에 대해 잘 모르는 이는 한 문파의 수장이 고급진 옷을 입은 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겠지만 악인들은 하오문주가 어떤 사람인지 아주 잘 안다. 검마와 육합은 슬쩍 눈을 마주쳤다. 그들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새삼 자하를 눈에 담은 요란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검은색, 역시 잘 어울리세요."
 "그래? 검은색에도 종류가 있더라고. 어떤 건 먹 색 같고 어떤 건 밤하늘 색 같고. 설이 비슷한 색 두고 고민하는 이유가 있었어."
 "우설 님 안목이 정말 뛰어나셔요. 저는 틀림없이 노을 닮은 황색이 잘 어울리실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밝은 건 별로야."
 "신수가 훤한 사람은 뭐든 잘 어울린대요. 그래도 셋째 사부님은 밝은 색보다는 어두운 색이 조금 더 잘 어울리긴 하세요."
 "오늘 나는 몇 점이야?"
 "십점 만점에 십점이세요."
 
 칭찬하는 이와 칭찬 받는 이 모두 아무렇지 않은 대화가 물 흐르듯 흘러갔다. 평소 의복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지 요란과 자하는 아주 진지했다. 검마와 육합은 저들의 세상에 빠지기 시작한 두 사람을 두고 적당한 곳에 앉았다.
 무인에게 옷은 그닥 중요하지 않다. 물론 중요히 생각하는 이가 몇몇 있으나 대게 신경 쓰지 않는다. 옷은 그냥 걸치는 방어수단일 뿐. 전투 한 번에 피와 흙먼지로 더럽혀지고 자칫하면 찢어진다. 쉽게 망가지는 한낱 천쪼가리를 신경 쓰는 건 강호를 살아가는 이들에겐 쓸데 없고 불필요하다. 전투 시 의복을 신경 썼다간 피할 수 있는 공격을 피하지 못 하고 막을 수 있는 공격을 막지 못 하다가 비명횡사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우설은 발품을 팔아 좋은 품질의 옷감을 사는가 하면 제 취향에 맞는 옷을 직접 만든다. 이는 그가 아주 좋아하는 취미다. 강호에서 옷가지를 신경 쓰며 마음을 쏟는 건 물론 그가 그만한 실력을 가진 고수라 가능한 일. 무엇보다 우설은 현재 천하제일쾌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었으니 그런 취미를 가졌다고 참견할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그런 사람이 하오문주의 연인이다. 설의 기쁨을 그 무엇보다 중시하는 이자하가 연인을 따라 의복에 신경 쓰게 된 건 지극히 당연한 일. 얼마 전에도 설과 함께 일양현으로 향하고 있다는 서찰을 받은 직후 설이 제게 어울린다 말해줬던 색을 기준으로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차성태 및 수하들을 괴롭히며 며칠이고 이어진 고민은 바로 오늘 아침이 밝아서야 마무리 되었다.
 
 "장신구를 쓸까? 머리끈은 이 색이 제일 낫지?"
 "여기서 더 꾸미면 과해요."
 "그렇지? 내 생각도 그래."
 "셋째야, 막내는?"
 "설이랑 올 거야."
 "둘이 만났더냐?"
 
 두 사람의 토론이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아 육합이 적당한 순간에 끼어들었다. 검마가 묻자 자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맹에 있었대. 이번에는 짧게 다녀왔나 보더라고."
 
 몽랑은 일이 있어 무림맹에 갔다. 그 곳에서 방랑을 마치고 휴식중인 설을 만났고, 함께 일양현으로 돌아가겠다는 서찰을 하오문주 앞으로 보냈다.
 설은 드물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무인이다. 조직에 속하면 자유롭지 못하고 온갖 규율 때문에 귀찮다는 게 이유다. 현후와 함께 다니며 중원에서도 손에 꼽는 고수라서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걱정되는 게 연인의 마음. 자하는 설을 하루 빨리 하오문으로 들이고 싶었다.
 이미 마음이 통한 연인이다. 설을 보호할 명분은 충분했으나 제 울타리 안에 넣고 싶었다. 얇은 울타리도 답답해 할 우설이니 강요는 안 하지만 좀 더 욕심이 나는 게 당연하지 않나. 자하는 아쉬운 마음을 애써 달랬다.
 요란이 장득수가 부르는 소리에 내려가고 악인들이 뒤늦은 근황을 나눈 지 한 다경 쯤 되었을까 문득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세 사람은 약속한 듯 대화를 멈추고 창 밖을 쳐다봤다.
 객잔 앞에는 새하얀 짐승이 있었다. 무공을 사용하는 호랑이로 유명한 현후는 이제 강호에서 영물 취급을 받는다. 천하제일에 짐승을 포함한다면 당당히 천하제일쾌를 차지할 만큼 속도로만 따지면 그를 따라올 자가 없고, 웬만한 고수는 쉽게 물어 죽일 무공을 가졌다.
 그런 신비한 짐승은 우설의 동생이었다. 현후가 있다는 건 곧 설도 있다는 것. 어디든지 붙어다니는 그들이 함께 있지 않다는 데에 의문을 느낄 무렵 눈을 깜빡이는 찰나에 두 인영이 거의 동시에 나타났다.
 아니, 셋이었다. 설의 등에서 내려온 몽랑은 비척거리더니 현후의 등 위로 쓰러졌다. 설 외 타인의 접촉을 끔찍이 싫어하는 현후는 웬일로 얌전히 제 등을 내어주고는 그대로 객잔 안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설은 그런 한 마리와 한 명의 뒤를 따르며 옆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었는데 그는 초대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간만에 연인을 눈에 담아 행복감에 차 있던 자하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아니, 저 새끼는 왜 왔어?"
 
 자하와는 상반되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색으로 도배한 사내, 백의서생이 뒷짐을 진 채 걸어오고 있었다.
 함께 만장애를 다녀왔을 때만 해도 그리 나쁘지 않은 관계에서 좋은 쪽으로 옮겨졌으나 현후와 설의 경공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안 좋은 쪽으로 대폭 기울었다.
 자하는 팔짱을 낀 채 문을 노려보다가 밍기적거리며 들어오는 몽랑을 향해 말을 쏟아냈다.
 
 "한심한 놈. 등신 같은 놈. 동생 등에 업혀 들어오는 놈. 하늘 같은 누님 옆에 혹 붙이고 돌아온 놈."
 "이 새끼는 왜 지랄… 아니, 왜 그러는지 알겠다. 이번엔 내가 참는다."
 
 황당하단 얼굴로 바람 방향 따라 뻗친 머리를 정리하던 몽랑은 성질을 누그러뜨리며 제 사부에게 인사를 올렸다.
 
 "사부님, 다녀왔습니다."
 "그래."
 
 몽랑이 육합과 눈인사를 주고 받는 사이 현후를 가운데 끼운 두 사람도 마저 도착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시시덕거리던 우설은 저를 빤히 쳐다보는 자하를 발견하자 눈을 접어 미소지었다. 말랑한 볼이 선홍빛으로 물들었다.
 
 "자하야!"
 
 밝은 목소리가 사방에 퍼진다. 자하는 말없이 마주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그러자 설이 껑충 뛰어 품에 쏙 파고 들었다. 돌진하듯 빠르게 뛰어가 깊게 안기는 걸 좋아하는 설의 특성을 이용한 자하의 작은 꼼수였다.
 꽉 안아주며 잘 다녀왔냐는 인사를 주고 받던 자하는 다정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사나운 눈으로 백의서생을 노려봤다. 하오문주의 서늘한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태연히 오랜만이라는 인사인지 보고인지 모를 말을 늘어놓는 게 백의서생이다.
 따끈한 연인 품에서 노곤노곤 녹아내리던 설은 다가온 현후가 코로 허리께를 쿡쿡 찌르고서야 떨어져 나왔다. 자하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걸 본 몽랑과 육합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은 마련된 자리에 앉으며 그제야 불청객이 나타난 이유를 설명했다.
 
 "백의 선배는 내가 초대했어. 천악 선배도 데려오고 싶었는데 도망갔어."
 "천악… 아니, 도망갔다고?"
 "그래. 아주 꽁지 빠지게 내빼더군."
 
 백의는 요란이가 내온 차를 이리저리 살피다가 한 모금 홀짝였다. 몽랑은 악인들의 시선이 제게 쏠리자 한숨을 뱉으며 입을 열었다. 자신이 천악을 대변해주는 이 상황이 얼척 없는 듯했다.
 
 "…돌아오는 길에 마주쳤는데 둘이 같이 있더라고. 누님이 천악 선배한테 비무를 청했는데 천악 선배가 '백의와도 겨룬 적 없지 않느냐, 내 밑인 저 녀석을 꺾고 오면 받아주겠다.' 라고 해서 여기까지 경공으로 왔다."
 "나를 던져주고 도망간 거지."
 
 백의가 뒤끝 있게 덧붙였다.
 
 "재밌었어! 간만에 신나게 달렸네. 백의 선배 정말 빠르더라구. 이겼으니까 천악 선배한테 가도 되겠지?"
 "그 녀석은 확실하게 마무리 하고 와야 받아줄 거다."
 "어? 그럼 한 번 더 해야겠네."
 "다음엔 단 둘이서 해야지. 오늘은 짐 하나가 있었으니."
 
 물론 그 짐은 몽랑이다. 몽랑의 눈썹 한 쪽이 하늘로 솟으며 무어라 반박하려다가 현후가 허리에 머리를 비비며 그르릉 울자 한숨만 뱉으며 입을 다물었다. 영리한 맹수가 그의 감정을 읽고 위로해준 것이리라.
 
 "짐이라고 하지 마. 선배는 안 업어주고, 후는 타는 게 어려우니까 업어줄 사람은 나 뿐이었잖아."
 "알아서 오게 두면 되잖나."
 "안 돼."

 세 사람과 한 마리 중, 상대적으로 경공이 느린 몽랑은 당연히 뒤처질 수밖에 없다. 차마 동생을 두고 올 수 없었던 우설이 그를 업고 경공 대결을 펼쳤다는 말이다. 몽랑의 자존심이 상하는 대화였으나 어찌됐든 사실이었고 저들의 경공이 그에 비하면 까마득히 높았으므로 몽랑은 비교적 타격 없는 얼굴로 차나 홀짝였다.
 
 "심판은 내가 할게."
 "자하가?"
 "현후를 못 믿는 건 아닌데 그냥 저 자식이 기분 나쁘니까 내가 봐야겠어."
 
 백의서생은 특히 우설의 경공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 현후가 더 빠르지만 그는 사족보행을 하는 짐승. 그 현후와 비등비등한 인간에게 더욱 흥미가 동했는지 백의는 틈만 나면 우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거나 간단한 동작을 요청하는 등 그의 독문무공을 연구하려 들었다.
 숨기는 게 없는 우설은 꼬박꼬박 답해주고 크게 귀찮지 않다면 부탁을 들어주어서 자하의 마음은 편치 않다. 질투가 심한 성격과 남에게 관대한 연인을 걱정하는 그의 심정을 알면서도 속을 긁듯이 대놓고 부탁하는 백의 탓이다.
 백의는 자하의 살벌한 눈빛에도 마음대로 하라며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을 비쳤다. 태연자약한 태도가 그의 성질을 더욱 돋궜으나 간만에 연인과 함께하는 시간을 허비할 수 없으므로 천하제일은 마음을 억눌렀다.
 
 "설아, 이번에는 어디를 다녀왔어?"
 "남쪽에. 가다 보니까 눈에 띄는 산이 있길래 거기로 갔지. 객잔에서 듣기로는 그 산 동서쪽에 높다란 절벽이 있고 그 절벽에 동굴이 있는데 그 동굴도 엄청 가파르대. 그 안을 깊숙이 들어가면 만년설삼이 있다더라고."

 

 갑작스레 시작한 이야기에도 사내들은 설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한때 비무행이랍시고 목적지 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녔던 우설은 이젠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이번 방랑도 만년설삼이라는 희귀한 영약을 찾는 여정이었다.

 
 "그래서 한 번 가보려고 그 객잔에서 하룻밤 묵었거든? 근데 거기가 산적 영업장 중 하나였나 봐. 덕분에 달 아래서 칼춤만 실컷 췄어."
 
 사대악인의 눈에 이체가 서렸다.
 하오문의 영향으로 패악을 일삼는 흑도가 줄었으나 중원 외부나 끄트머리에 있는 곳에서는 여전히 때려죽일 놈들이 남았다. 활동반경이 넓은 연인을 위해 넓게 움직여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한 이자하였다.
 
 "전부 팔 하나 다리 하나 부러뜨려놓고 수장 잡아다가 맹에 데려갔어."
 "잘 했네. 그래서 이번에는 빨리 돌아왔구나."
 "응. 좀 쉬다가 다시 떠나려고 했는데 몽랑이가 왔대. 얼굴 보러 갔더니 일양현으로 돌아간다네. 간만에 다 같이 밥 먹자길래 따라왔지."
 
 몽랑이 자하를 쳐다봤다. 무덤덤한 눈빛에서 의기양양함이 느껴져서 자하는 묵묵히 고개만 한 번 끄덕여줬다. 몽랑이 동행하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설의 방랑이 얼마나 길어졌을지는 설 본인도 모르는 일이다. 원래부터 제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는 여인이었으니.
 이후 대화는 설을 기준으로 이어졌다. 간만이라지만 바로 한 달 전에도 사대악인을 모아두고 식사를 했던 설은 여전히 재잘재잘 말을 잘 했다. 검마와 육합의 검학은 어떻게 발전했는지, 요란이 빙공은 어떻게 되어가는지, 요새 일양현이나 흑묘방 세력은 어떻게 지내는지. 사대악인에게 일어났던 일화를 전부 알아내겠다는 듯 많은 것을 물었다. 설은 사내들의 담백하고 간략한 답을 들으며 웃기도 하고 짜증내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며 다양한 표정을 지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설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던 백의는 탁자에 음식이 올라오고 대화가 잠시 끊긴 틈을 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우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응?"
 
 장득수가 특별히 준비한 냉국밥을 한 수저 뜨며 눈을 동그랗게 뜬 우설은 이어지는 질문에 잠깐 손을 멈추었다.
 
 "애장품은 무슨 뜻인가?"
 
 입가심으로 차를 한 모금 마시던 몽랑은 그대로 사레가 들렸다. 잠시 거친 기침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와, 씨. 저… 저 미친놈, 그걸 그, 콜록, 그냥 대놓고 물어보네."
 "내가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서."
 
 몽랑이 사납게 쏘아붙여도 설의 대답을 기다리는 백의였다.
 모든 시선이 작은 머리를 향했다. 몇 분 전까지 시시덕거리며 즐거운 대화를 주도했던 설은 저 혼자 시간이 멈춘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생각을 여실히 드러내던 얼굴에는 감정 하나 실리지 않아서 잘 빚은 도자기 같아졌다.
 이질감이 느껴지는 서늘한 행태에 모두가 심상찮은 기운을 감지했을 즈음 설은 아무렇지 않게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들은 사람 같지 않은 작태였다.
 
 "말 그대로 애장품."
 "그런 뜻이 아니지 않나?"
 "맞는데."
 "그럼 본인이 물건이었다는 의미가 된다만."
 
 실제로 우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대화가 흘러갈 수록 경악으로 물드는 몽랑의 얼굴이나 심각하게 귀를 기울이는 악인들. 분위기는 삽시간에 가라앉았으나 막상 대화의 주체인 우설은 태연히 국밥을 한 숟갈 더 떠먹었다.
 
 "이게 무슨 대화야? 무슨 일 있었나?"
 
 육합이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몽랑이 입을 열었으나 백의가 선수를 쳤다.
 
 "우리는 옷을 고르다가 만났는데 거기 주인이 우설을 데리고 이 옷 저 옷 다 입혀보고 있더군. 군말 없이 서서 하는 대로 가만히 있길래 물었지. 귀찮지 않느냐고. 그때 애장품에겐 익숙한 일이라고 답했다."
 
 애장품(愛藏品). 소중한 물건을 뜻하는 단어. 생물인 인간에게 붙이기엔 적절하지 못한 말이다. 그런데 우설은 그런 단어를 스스로 자신에게 사용했다. 백의는 그 이질감을 그냥 넘기지 못했다. 분위기와 우설의 기분을 살피는 것보다 자신의 호기심을 해결하는 게 중요했으므로.
 몽랑은 그렇지 못했다. 기어코 말로 꺼내버린 백의 탓에 가시방석에 앉은 것은 그였다. 당시 그런 말을 꺼냈던 설의 무기질적인 표정을 기억하는 그는 백의가 서생 답게 미친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으나 그 중에서 단연 심각한 건 자하였다. 애장품이라니. 친구였던 전생에도 연인이 된 지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다. 어릴 적 기억이 대부분 날아간 설이기에 그의 옛 이야기를 듣는 건 기대하지 않았다. 저번에 만장애에서 들은 일부 역시 설이 말하고 싶어서 들었지 누군가 요청한 게 아니다. 그 이야기는 설의 뿌리이자 가장 깊은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었기에 다른 얘기는 궁금하지도 않고 들춰낼 생각도 전혀 없었는데 설의 또 다른 아픔일지 모르는 것을 백의가 살살 긁어내고 있다.
 상황 파악을 끝낸 자하가 삽시간에 살기를 뿜어댔다. 적당히 하지 않으면 이 곳에서 자웅을 겨룰 거라는 경고였다.
 
 "재밌는 이야기는 아닌데 그래도 듣고 싶어?"
 
 그런 자하를 가라앉힌 건 다름 아닌 이야기의 당사자인 우설이었다. 제 치부를 건드리는 언동에도 아무렇지 않게 밥이나 먹던 그는 질문자인 백의가 무를 생각이 없어 보이자 차가운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
 
 "먼저 밥부터 먹고. 나 배고파. 후도 배고프대."
 
 그제야 사대악인과 무제는 얌전히 수저를 들었다.
 
 
 * * *
 
 
 모두가 식사를 마치고 차가 한 잔 씩 돌고서야 설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에 아저씨를 만나러 갔잖아? 그때 들었어. 아주 어렸을 때도 아저씨를 만난 적이 있었대."
 
 설이 말하는 아저씨는 전 마교 교주를 말한다. 중원제일을 다투는 고수들의 비무가 끝나고 강호의 분위기를 살피던 설이 며칠 후 그를 직접 찾아갔다. 물론 설에게 전 교주와 독특한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억에 구멍이 많은 설은 자신의 과거, 차마 떠올리지 못하고 결국 잊어버린 기억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고 전 교주는 흔쾌히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사이에 설의 보구 중 하나인 현강검을 그가 주었다는 사실이 섞여 있었다.
 
 "그 얘길 들으니까 생각나더라. 현강검은 마교에게 멸문 당한 상단의 물건이었어. 아저씨와 나는 그 상단에서 재회했던 거지. 아저씨는 집이 불 타고 사람들이 죽는 마당에 현강검을 주면서 놓아줬어. 나는 후를 데리고 도망쳤고… 얼마 안 지나서 소백 삼촌이랑 아버지를 만났어."
 
 설은 차를 마셔 목을 축였다. 어느 새 제 옆으로 다가온 후를 쓰다듬으며 말을 고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그 상단에 있었던 건 상단주가 나를 샀기 때문이야. 바다에서 겨우 빠져 나왔을 때 어떤 사람이 나를 데려가서 밥도 먹이고 씻겨주고 재워줬어. 아마… 산적? 흑도 쪽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아무튼, 그 사람 덕에 목숨을 부지했지. 며칠 동안 보살핌을 받다… 팔려 갔고."
 
 결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님에도 어제는 무엇을 먹었는지 늘어놓는 양 덤덤하기만 하다. 설은 주변에서 엿듣는 어린 존재가 있는지 벽 너머를 훑어보고 말을 이었다.
 
 "나를 사간 사람은 말했던 대로 상단 가주였어. 어디 상단이었는지는 기억 안 나… 그 사람은 희귀한 걸 모으는 데 혈안이 된 사람이었는데 수집품에 생물도 포함되는 것 같더라고. 그 사람 집에서 현후도 만났어."
 
 현후가 이를 드러내며 불쾌한 기색을 비쳤다. 설은 느릿느릿 짐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현후는 그르렁거리면서도 설의 허벅지에 머리를 올려둔 채 손길을 만끽했다.
 
 "그때 후는 엄청 사나웠어. 먹이 주러 온 사람도 물고 할퀴고 성질이 장난 아니었다? 전에 마교랑 싸울 때 자하 같았어."
 "음."
 
 설의 입에서 자하의 이름이 나왔지만 지금은 그닥 반갑거나 기쁘지 않았다. 자하는 설의 다리에 반쯤 누워 눈을 감은 짐승을 응시하다가 이어지는 말에 집중했다.
 
 "덕분에 맨날 철창 신세였지. 좁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갇혀 지냈어. 그때 현후라는 이름도 지어줬고… 난 후랑 자주 놀았어. 가주는… 손님에게 나를 보이거나 새 옷과 장신구로 꾸밀 때 외에는 관심이 없어서 시간은 많았지. 수집품을 모아둔 곳에는 이것저것 많아서 심심할 틈이 없었어." 
 "…달아나고 싶지 않았나?"
 
 검마가 물었다. 설은 눈을 굴리다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때 저는 기억이 몇 개 없었어요. 제 상황이 정상이 아니란 걸 몰랐죠. 거기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그러고 싶어도 못 했을 거예요. 발목에 항상 사슬이 묶여 있었거든요."
 
 설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기억을 더듬는 듯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눈만 깜빡거렸다.
 사대악인은 설의 예상치 못한 과거에 저마다 심각해졌으나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입을 여는 설은 이야기의 당사자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차분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되새겨 보면 그닥 나쁜 기억은 없어. 나를 팔려고 보살펴 준 흑도나 경매장 사람들은 친절했거든. 때리지도 않고 밥 잘 주고 잘 수 있게 해주고. 내가 안 울고 말 잘 들어서 그랬나? 그 상단에 있을 때도 바깥에 못 나간 것 빼고는 괜찮았어. 밥도 삼시세끼 먹고 싶은 걸 먹고, 현후와 놀았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었거든.
 내가 운이 좋았던 거겠지. 심한 일을 겪지 않았다 해서 인신매매나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게 뭐 어떻냐는 건 아니야. 동조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것들이 나쁘고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걸 지금은 잘 알아.
 그냥, 그런 일을 겪었어도 나는 괜찮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너무 화내지 마, 자하야."
 
 꽉 쥔 주먹 위로 서늘한 손이 내려앉았다. 하오문주의 눈에 노을빛이 일렁이다가 사그라졌다. 자하는 살살 달래는 정인의 목소리에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간만에 들끓는 분노가 이성을 좀먹으려다가 죽어 없어졌다.
 진정한 자하가 나지막이 물었다.
 
 "가주 놈은 죽었어?"
 "응. 그 상단에서 살아나온 건 나랑 후 뿐이야."
 "그 상단이 노려진 이유는?"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백의가 물었다. 그는 그 와중에도 그게 궁금했나보다. 몽랑과 육합이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보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희귀한 물건이라면 마구잡이로 수집하던 사람이야. 덕분에 정사마도의 관심을 한 번에 모았지. 무림맹과 마교가 기싸움 하면서 동시에 주시하던 곳이었어. 거기서 정마대전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바깥 분위기가 살벌했겠지? 그러다 마교가 얻으려던 뭔가를 가주가 사들인 거야. 마교는 그걸 명분으로 처들어 왔고."
 "뭘 샀지?"
 "글쎄? 그것까진 모르겠어."
 "상단을 사이에 두고 무림맹과 대치를 이어가는 상황에 물건 하나 뺏겼다고 처들어가나? 무림맹에게 마교를 칠 명분을 주는 꼴이잖나."
 
 멀뚱멀뚱 눈만 끔뻑이던 설이 고개를 내려 제 허리춤에 있는 검은 장검을 만지작거렸다. 현강검, 상단에서 전 교주와 만나 그가 건네준 무기. 끈질긴 질문을 진지하게 고려해주는 사람, 그것이 자하의 연인이다.
 자하는 심란한 와중에 질문만 늘어 놓는 백의서생 이름 아래 살심을 일점 적립하며 화를 억눌렀다.
 
 "그래서 뭐, 이 새끼야.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뭘 더 듣고 싶은데?"
 
 쏘아붙이듯 툭 튀어나간 말은 어쩔 수 없다. 설은 괜찮다고 했지만 속은 괜찮지 않을 수 있다. 속은 검게 타들어 재만 남았는데 자각하지 못했을 수 있다. 설은 제 감정에 솔직하면서도 잘 모르는 사람이었으니.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이 화제를 마치고 싶은데 물음표 살인마의 집착은 끊어지질 않았다.
 백의는 여즉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차를 홀짝인 뒤 입을 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전 교주가 우설을 탈출시켜서 맹에 넘기려고 그런 게 아니냐는 말이다."
 
 그 말에 우설은 물론이고 사대악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백의의 말은 어린애를 탈출 시키려고 괜한 분란을 일으켰다는 말이 된다. 불복종이 곧 죽음인 마교에서, 전 교주가. 무림맹과 대치하는 시기에.
 자하도 화내던 걸 잊고 생각에 잠겼다. 절대 그럴 리 없다는 답은 할 수 없다. 전 마교 교주라 해서 그가 변덕이라도 그런 짓을 하지 않았으리라 확실히 말할 수 없다. 그가 상대하고 마주했던 전 교주는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었다. 마교 쪽 인간이라고 전부 염치가 없고 생각 머리가 없지 않다. 그건 검마가 가장 먼저 증명했다. 그 간 전 교주가 설을 대했던 평범한 행동만 떠올려도…… 자연스레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아저씨가 그때."
 
 깊게 깔린 정적 위로 설의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몇 번이고 입만 달싹이던 설은 천천히 입을 움직여 말했다.
 
 "어머니의 유언을 잊지 말라고 하셨어."
 
 아저씨는 어머니의 유언을 알고 있었던 걸까? 가늘게 이어지는 말이 유난히 귓가에 오래 맴돌았다. 누구 하나 섣불리 말을 꺼낼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렇게 모두가 생각에 잠겨 숨 소리 한 번 내지 못한 지 몇 분, 설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느 새 설의 뒤에 앉아 상황을 관망하던 현후도 기지개를 켰다.
 
 "나, 다녀올게."
 "뭐?"
 "누님, 어딜 가십니까?"
 
 설은 부랴부랴 제 짐을 정리하고 보구를 점검했다. 마지막으로 옷매무새까지 다듬은 그는 창문을 활짝 열어 발 하나를 걸친 뒤 뒤를 돌아봤다. 순식간에 떠날 채비를 마친 이를 다섯 사내가 제각각의 생각이 드러나는 표정을 지은 채 바라본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친 설이 씩 웃었다.
 
 "아저씨한테 다녀올게! 조만간 다시 만나자고 했는데 못 본 지 오래 됐거든. 이렇게 된 김에 직접 가서 물어봐야겠어."
 "아니,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자하가 눈썹을 잔뜩 내려뜨린 채 비 맞은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설은 멋쩍은 얼굴로 고민하는가 싶더니 창문에서 내려와 그에게 다가갔다. 슬그머니 팔을 벌린 그의 어깨에 매달려 꽉 안아주고는 그대로 살짝 뛰어올라 볼에 입을 맞췄다. 서늘한 기운이 그의 얼굴에 옅은 자국을 남겼다.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는데 훌쩍 떠나버려서 미안해. 이번엔 정말 금방 올게! 궁금한 것만 물어보고 올 거야. 그리고 나 정말 괜찮으니까 걱정 말고. 기억나는 건 뭐든지 말해주기로 약속했잖아?"
 
 이런 식으로 말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배시시 웃는 얼굴이 길게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난다.
 자신의 태양이 이리 말하는데 거절할 수 있는 자가 있으랴. 자하는 결국 무거운 한숨을 토해내곤 설의 콧잔등에 입술을 떨어뜨린 뒤 꽉 안았다. 금방 놔준 그의 얼굴에는 서운하고 아쉽다는 감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다녀오겠습니다!"
 
 사대악인과 백의서생에게 눈인사까지 마친 설은 미련없이 창 밖으로 뛰어내렸다. 현후는 폭풍이 지나간 듯 넋을 놓은 이들을 한차례 둘러보고는 자하의 허리에 머리를 부볐다. 그의 딴에서는 인사였다. 이를 알아들은 자하가 머리를 한 번 쓰담아주고 몽랑이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네자 현후도 창 밖으로 나갔다.
 자하가 창 밖을 내려다 봤을 때 두 신형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벌써 저 끝 지평선으로 작아지는 뒷모습을 응시하던 그는 천천히 뒤를 돌았다.
 설이 떠난다는 말을 할 때부터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감한 검마와 육합은 벽에 가까이 붙은 좌석에 나란히 앉아 차나 마셨다. 수련하다 왔으니 확실히 쉴 생각이었기에 방해 받고 싶지 않았다. 몽랑은 설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설과 이어지기 전으로 돌아온 듯한 자하의 기세에 슬금슬금 물러나더니 검마 옆에 앉았다. 이제 악인 세 명이 하오문주와 무제의 대치를 바라보는 상황.
 
 "백가야, 어떻게 책임질래. 너 때문에 내 님이 떠나셨다."
 "금방 돌아온다 하지 않았나."
 "원래 한 번 돌아오면 며칠은 묵다가 가셨다. 한 시진도 안 돼서 떠나신 건 처음이다. 네 탓이다. 엿새 동안 어떤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염병할 서생 놈이 그것도 모르고 설치다가 기어이 일을 치는구나."
 
 자하는 백의서생의 말을 철저히 무시했다. 안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와중에 백의는 자하가 이럴 줄 예상했다는 듯 쥘부채를 꺼내 제 하관을 가리고 비스듬히 서서 기다렸다.
 
 "싸울 거면 나가서 싸워라."
 
 검마의 나지막한 말을 신호로 자하가 앞으로 튀어나가고 옆으로 비스듬히 빠져나온 백의는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단숨에 창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 뒤를 검은 신형이 바짝 좇았다. 내부를 가득 채웠던 살의가 돌풍과 함께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육합과 몽랑은 그제야 편히 숨을 뱉었다.
 
 "셋째놈이 사랑을 하더니 돌아버린 것 같습니다."
 
 원래도 미친놈이었지만. 몽랑이 중얼거렸다. 대답은 없었지만 검마와 육합도 동의한다는 듯 눈을 내리깔고 차나 홀짝였다.
 일양현의 평화가 문주 덕에 잠깐 으스러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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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미포 10391자

 

간만에 신나게 글 쓴 듯.

3천자 정도 써놓은 거에 오늘 이어서 후루룩 썼는데 한 4시간 각잡고 쓰니까 다 씀.

오.. 많이 술술 쓴 거 오랜만.

 

신 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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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우설 글 커미션  (0) 2022.02.14